동행이야기

인터뷰"같이 하셔야죠.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을 만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는 노란 리본이 생겼다. 사람들은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지만, 그 뒤로도 여러 사회적 참사가 이어졌다. 참사가 반복될 때마다 새로운 색의 리본이 생겼고, 피해자와 시민, 활동가들은 진실과 책임, 더 안전한 사회를 계속 요구해왔다.

2026년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이를 지켜야 할 국가의 책임을 법으로 명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법 하나가 모든 참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가 안전을 하나의 권리로 분명히 선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다. 


공익활동가의 곁을 지켜온 동행은 이번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을 보며, 하나의 제도 변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그 뒤에서 오랫동안 움직여온 사람들의 시간을 함께 기록하고 싶었다. 사회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사람들의 곁을 지켜온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특별 인터뷰에서는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어떤 활동이 이어져 왔는지 그의 이야기를 통해 따라가 보았다.


인터뷰이 : 김선우 (4.16 연대 사무처장)

인터뷰어 : 강필준, 신나비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사진 : 조태현 (소셜 섹터 전문 사진작가)

 

 

"같이 하셔야죠.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 김선우 4.16연대 사무처장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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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저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때도 시민사회 활동을 하면서 민주주의 회복이나 사회 변화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었죠.

4월 16일에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처음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그랬듯이 당연히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구조할 수 있겠지, 하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어요. 다음 날이 되어도 살아 돌아온 사람은 늘지 않고 사망자만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컸습니다. 나름대로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좋게 바꿔보겠다고 활동해왔는데, 우리가 해온 활동이 이 사회를 이렇게까지도 못 바꿨나 싶었거든요. 그래서 참사 다음 날부터 주변 단체들, 시민들과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뭐라도 해보자.” 


처음에는 정말 그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세월호 참사와 인연을 맺고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9년 말에 서울에서 4.16연대 사무처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제 활동도, 사람 관계도 전부 대구에 있었어요. 그걸 다 두고 서울에 와서 다시 ‘4.16’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그래도 피해자들 곁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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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대병원에 코로나-19 후원 물품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 출처 = 대구 4.16 연대)


aefd0421eb472.png  ▲ 대구 '책방아이'에서 열린 북토크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사진 출처 = 4.16 연대)


우리가 여기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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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피해자들 곁에 다가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유가족이 되고 피해자가 된 분들이잖아요. 사랑하는 가족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분들에게 “우리랑 같이 뭔가를 해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어요.


그때 가장 필요했던 건 “우리가 여기 있어요”라는 걸 보여주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시민들이 피해자들 곁에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처음에는 국민대책회의가 그런 역할을 했고, 이후에는 이 운동이 금방 끝날 일이 아니라는 생각 속에서 4.16연대가 만들어졌습니다.


4.16연대는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사회를 위해 활동해온 연대체예요.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배가 침몰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배는 침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매뉴얼과 구조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활동하다 보면 “진상규명,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겁니다. 같이 하셔야죠. 저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조금 얼렁뚱땅 답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정말 그렇거든요. 


진상규명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4.16연대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피해자들만 해야 하는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시민들이 같이 묻고, 같이 지켜보고, 같이 걸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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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생명안전기본법안이 가결되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안전은 개개인이 알아서 챙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국가를 만들고 정부를 둔 이유는 결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잖아요.

그래서 저는 계속 묻고 싶습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26년 5월 7일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늦었지만, 피해자들과 그 곁에 있었던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안전과 관련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기쁜 일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법이 없어서 참사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다만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안전이 무엇인지, 안전할 권리가 무엇인지, 그 권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지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수많은 참사를 겪은 대한민국에 그동안 안전할 권리와 책임을 명문화한 규정이 이제야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법을 만든 것은 시작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법이 얼마나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시행하는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더 긴 여정이 남아 있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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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생명안전기본법안이 통과되자 대형 재난·산업재해·사회적 참사 등 유가족들이 눈물을 훔치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아시아경제)


피해자는 누구인가

저는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피해자가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참사가 일어나면 피해자를 시혜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컸어요. 국가가 돌봐줘야 할 사람, 우리가 불쌍히 여겨야 할 사람으로 보는 거죠.

성금을 모으고, 국가가 보상하고, 책임자 몇 사람을 처벌하면 참사 이후 해야 할 일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는 피해자가 그런 존재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피해자는 우리 사회를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어요.

세월호 피해자들은 계속 진실을 요구했고, 책임자 처벌을 이야기했고, 다시는 같은 일을 겪는 사람이 없도록 안전사회를 만드는 운동에 직접 나섰습니다.

피해자에게는 애도할 권리가 있고,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어요.

저는 세월호 참사가 그런 권리를 우리 사회에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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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 연대 김선우 처장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4.16 연대)


앞서가지 말자. 같이 가자.

세월호 참사 이후 제가 많이 배우게 된 것 중 하나는 ‘피해자 곁에 어떻게 있을 것인가’예요.

예전에는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내가 이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포부가 컸어요. 책임감이나 의무감도 굉장히 강했고요.

그런데 피해자들과 직접 함께 활동해보니까 책임감이나 의무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피해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잖아요. 어떤 때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운동가가 되었다가, 또 어떤 순간에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 곁에 있으면 저희도 같이 움직이게 돼요. 가족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슬퍼하기도 하고, 또 그런 마음 때문에 다시 힘을 내서 활동하기도 하고요.


12년 동안 활동하면서 정말 많은 피해자와 시민들을 만났는데요. 그러면서 저도 활동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달리기를 생각하면 앞서가는 사람도 있고 뒤처지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데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은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피해자들과 함께하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절대로 앞서가지 말자. 그렇다고 너무 뒤처지지도 말자. 그냥 러닝메이트처럼 같이 가자.”

 

f0904baf7afad.png▲ 4.16 연대 김선우 처장이 "기억하는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종이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 출처 = 4.16 연대)


얼마나 많은 색깔의 리본이 생겨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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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가방에는 늘 노란 리본이 달려 있어요. ‘20140416’이라고 적힌 가죽키링도 있고 작은 세월호 리본도 있고요.

책상 앞에도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만든 물건들이 많이 놓여 있습니다. 세월호 부모님들이 “사무처장, 이거 하나 만들었어. 하나 가져가” 하면서 주신 것들이 하나둘 쌓인 거예요.

그런데 세월호 이후에도 여러 사회적 참사가 계속 일어났잖아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에는 주황색 리본이 생겼고, 이태원 참사에는 보라색 리본이, 오송 참사에는 녹색 리본이 생겼습니다. 또 다른 참사가 생길 때마다 또 다른 색의 리본이 생기고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얼마나 많은 색깔의 리본이 생겨야 우리 사회가 바뀔 수 있을까.”



0c2f63830bdc2.png ▲ 4.16 연대 리본 공방에서 제작한 여러 색깔의 추모 리본 (사진 출처 = 연합뉴스)03adadc9fb2d7.jpg ▲ 각 참사에 대한 설명과 함께 추모 리본이 담겨져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리본을 없애자고 할 수는 없어요. 기억해야 하니까요. 저는 기억한다는 게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억은 책임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책임 있는 사람들은 참사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해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면 책임도 흐려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돼요. 세월호 배지를 하나 달고 다니거나, 노란 팔찌를 하고 다니는 것도 하나의 실천이라고 생각해요. 길을 걷다가 다른 사람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면 괜히 반갑잖아요. ‘아, 이 사람도 기억하고 있구나.’ 하고요. 그런 작은 표시들이 서로에게 기억을 건네는 것 같아요.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할 필요도 없고, 모두가 활동가가 될 필요도 없어요.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잊지 않고, 한 번 더 질문하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바뀌고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함께 기억하는 것이 이 운동을 계속 이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 길은 혼자 갈 수 없어요.


“같이 하셔야죠.
저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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