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야기

인터뷰[학자금 지원] 난민과 함께 조금씩 피어나는 힘 _ 김진수 활동가 ((사)피난처)

공익활동가들의 성장 욕구는 매우 강합니다. 활동을 더 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하고 노력하죠. 관련 분야에 진학해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쌓고, 이를 통해 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동행의 <공익활동가 학자금 지원사업>은 활동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학업을 병행하는 공익활동가를 지원합니다. 대학 및 대학원에 진학한 공익활동가를 대상으로 연 2회 공모를 통해 학자금을 지원합니다.


Q. 반갑습니다. 피난처는 어떤 곳인가요?

피난처는 1999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입니다. 한국에서 난민 지원을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진 단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피난처를 경험한 난민들이 또 다른 난민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기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런 선순환을 만들어서 난민들이 적극적 주체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모델을 꿈꾸고 있습니다.


Q. 피난처 활동도 소개해 주세요.

저희는 난민들의 주민센터 같은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웃음). 난민분들의 필요에 맞게 다양한 사업들이 있어요.

난민보호팀은 초기 인터뷰부터 난민인정 심사 절차, 이의신청이나 소송 등 전반을 지원해요. 그리고 한국 생활에 필요한 의료 지원이나 행정지원, 긴급 생계 지원, 심리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협력팀은 난민을 교육하기도 하지만 학교, 교회, 기관 등 시민사회에 난민을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열국아이학교라고 해서 난민 아동들을 위한 방과 후 학교를 이태원에서 운영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오면 간식도 제공하고 예술 활동이나 체육 활동,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숙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난민분들과 점심도 같이 먹고요.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정서 지원 프로그램도 상시로 기획해서 나들이를 가거나 마라톤 대회를 함께 참여하기도 해요. 특히 마라톤 대회를 함께 한 게 너무 즐겁고 좋았어요(웃음).


Q. 정말 다양한 지원을 하고 계시네요. 피난처에서 첫 활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피난처는 주변에 인턴 활동했던 친구가 있어서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저도 난민 분야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표님 강연도 들어보고 그랬죠. 졸업 전에 미국에 있는 난민 지원단체에서 8개월 정도 인턴을 했었어요. 재정착 난민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도 현장에서 일해보고 싶었어요. 한국은 난민 캠프가 있는 건 아니지만 피난처가 현장의 성격이 크거든요. 2018년 인턴으로 1년 보내고 2019년부터 간사로 활동하고 있으니까 벌써 7년 차가 되었네요(웃음).


[난민지원 활동 모습 @김진수 활동가]


Q. 난민 분야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카투사에서 보직이 전투헌병이었어요. 텐트 쳐놓고 며칠씩 있으면서 밤새 총도 쏘고 그런 훈련을 많이 했죠. 제가 다뤄본 총기가 11가지 종류나 되고 제 손가락보다 큰 총알을 쏘는 기관총으로 훈련을 받다 보니까 처음으로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파괴력이 큰 무기들이 실제로 사용된다는 생각에 얼마나 참혹할지 느끼게 되고요. 그때가 시리아 내전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라서 마음이 좀 많이 갔어요. 지구 어딘가에는 전쟁이 일상인 사람들이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과 두려움 속에 살겠구나 싶었죠. 전역하고 나서도 지중해에서 시리아 난민 보트가 전복되고 터키 해변에 아일란 쿠르디가 발견되는 모습을 보고 실제 당면한 비극에 내가 뭔가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난민을 도와야겠다 싶었어요.


Q. 진수님은 난민보호팀에 계시죠? 주로 어떤 업무를 맡아서 하시나요?

주로 난민인정 심사 절차(난민 신청-면접준비-이의신청-소송)에 대한 거예요. 난민 신청서를 작성하고 변호사 없이 스스로 소송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고요. 법원 서류나 서면은 모두 한국어로 제출해야해서 양식에 맞게 번역해서 내는 업무도 하고 본국 상황에 대한 자료 조사도 해요. 주로 법적인 절차를 많이 다루죠. 보호팀 업무 전반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체 운영을 위한 행정업무도 맡고 있고요.


Q. 난민 지원 활동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활동한 지 2년 정도 됐을 때부터 소진되는 걸 느꼈던 것 같고 4년 차 정도 됐을 때 제일 심했어요. 저도 애쓰고 난민들도 절박하게 버티는데 달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인터뷰도 수차례 해서 의견서를 냈는데 번번이 반영이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무력함을 느꼈어요.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난민분들 건강도 안 좋아지고 생계도 어려워지고요. 그러다 보니 저한테 더 의존하기도 하시고요. 저도 대리 외상이 오면서 건강이 많이 망가졌어요. 우울도 심하게 오고 내 인생을 스스로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Q.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우선 주변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대표님을 포함해서 동료들이 제 힘듦을 항상 알아주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게 큰 지지가 되어서 저도 버틸 수 있었어요.

상담에서도 많이 이야기하는 건데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기 위해서는 환경이 필요하잖아요. 영양분을 제공하는 흙이 필요하고, 적절한 시기에 물과 햇빛이 있어야 하고 여러 조건이 있어야 싹을 틔울 수 있죠. 사실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꽃피우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환경이 필요한데 저는 피난처가 그 역할을 저한테 해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힘들었을 때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그러면서 저도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무력해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려고 했어요. 난민분들이 저를 믿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해준다는 것, 나를 신뢰해주고 있다는 걸 저도 믿고 상담 분야에서 좀 더 전문성을 가져보자 생각했어요. 그게 대학원 진학까지 이어지면서 활력을 얻었어요.


[김진수 활동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활동하며 전문성을 갖춘다는 게 누구에게나 고민일 것 같아요.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전문성을 가져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성장에 대한 욕구가 커서 배움을 좀 더 추구한 것도 있고요. 적어도 상담심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으면 저를 믿고 신뢰해 준 난민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이나 트라우마를 경감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난민분들은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시야가 좁아지고 사고가 경직될 때가 많거든요. 상담과 대화를 통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고 삶의 방향이 좀 더 나아지도록 하는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성향이나 기질적인 장점, 내가 어떤 걸 원하는지 고민했을 때 상담이 잘 맞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제가 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어서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생각했는데 주변에 야간대학원 다니시는 분들, 전공하지 않았어도 계속 공부하시는 분들 보면서 나도 해봐야겠다 생각했고, 2022년에 상담심리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Q. 학업과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조직에서는 어떤 지원이 있나요?

조직에서 정말 많이 지원을 해주셨어요. 일하는 것도 힘들 텐데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지지해 주시고요(웃음). 제가 논문 쓰면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처음에 잘 안 모이더라고요. 그때도 동료들이 자기 일처럼 주변에 독려해 주고 감사했죠.


Q. 쉬는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무엇을 하며 쉬나요?

입사 초기에는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취미 활동도 했었어요. 최근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잘 없긴 한데(웃음),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러닝이 쉼에 도움이 돼요.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뛰다 보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하다 보면 조금씩 늘어요. 성취감과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죠. 난민분들이랑 작년과 올해 마라톤 대회에도 나간 이유도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마라톤 대회 참여 모습 ©김진수 활동가]


Q.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연구인가요?

난민이라고 하면 본국에서 경험한 박해나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초점을 둘 때가 많이 있어요. 근데 수용국에 이주한 후 경험하는 스트레스가 미치는 요인이 더 클 수도 있거든요. 이걸 ‘이주 후 스트레스’라고 해요. 제가 실무에서 난민들을 만나면서 경험했던 문제들은 사실 그게 더 컸거든요.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강인한 난민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도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논문작성에도 ‘친사회성’이라는 변인을 선택했어요. 친사회성은 봉사활동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시간이나 감정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모든 게 될 수 있어요. 난민들이 이주 후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난민들의 친사회성이 줄여줄 수 있을지 살펴보는 게 제 연구 문제였어요.

일단은 영어로 설문조사 문항을 만들고 4개 언어(프랑스어, 아랍어, 암하라어, 튀르키예어)로 번역했어요.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했는데 너무 안 모이는 거예요. 논문을 또 미뤄야 하나 싶었는데(웃음), 난민분들도 제 연구가 너무 의미 있다고 해주시고 주변에 알려주시면서 자기 일처럼 도와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덕분에 250명 넘게 참여해 주셨어요. 동행에서 받은 지원금을 설문조사 참여자 사례비로 활용했는데, 그것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Q. 피난처 활동과 학업이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아직 과정 중에 있다는 생각이에요. 공부하면서 활동에 대한 관점이 변했어요. 피난처에서 난민들과 함께하는 게 난민분들뿐 아니라 내 인생과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게 가장 크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근속 연수가 늘어났죠(웃음).

근속 연수가 늘어나고 공부도 하고 있으니까 이 분야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연구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고 피난처에서 만난 난민들의 입장을 근거를 갖고 전달할 수 있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좀 더 활력이 생기게 되는 것 같아요.

상담 분야에서는 제가 난민을 지원한다는 게 차별되는 지점이고, 난민 지원 활동에서도 제 영역이 생기고 있는거죠. 그래서 활동과 공부가 시너지가 나는 것 같아요. 물론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지만, 나만의 길, 내가 걸어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Q. 활동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예요?

난민과 마음이 연결되는 지점이 가장 큰 보람이죠. 힘든 얘기를 꺼내주고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눠줄 때 저도 온전히 전달받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곁이 되어주는 것뿐인데 난민분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서 고맙다고 해주시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더디지만, 제도가 변할 때가 있어요. 그때 정말 감사하죠.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 기다림이 물거품이 아니라 인고의 시간을 버텨 열매를 맺는구나 생각하게 돼요. 난민들이 얼마나 강인하게 그 시간을 버텨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실질적인 정책 변화까지 가려면 굉장히 많은 노력과 연대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결과물로 나올 때 의미가 있다고 느껴요.


[난민 상담 모습 @김진수 활동가]


Q. 제도를 개선한 건 큰 보람이었을 것 같아요. 어떤 제도였어요?

난민만을 위한 정책은 아니고 외국인 아동에 대한 정책이었어요. 이주민 자녀가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했는데 성인이 되었을 때 비자가 없고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추방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기도 했고, 아동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한국에 몇 년 이상 체류한 아동들에 대해서는 현재 미등록이라 하더라도 구제하는 정책이 시행됐어요.

그리고 아동들뿐만 아니라 부모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자로 체류할 수 있게 됐고요. 물론 난민분들이 난민인정을 받은 건 아니죠. 그렇지만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장기적으로 살 수 있고 자기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제도가 생긴 거예요. 그런 구제 방안이 만들어져서 지원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끼죠.


Q. 활동을 계속하고 지속하는 힘을 가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좀 비현실적일 수도 있겠지만 안정감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생계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 활동가들 보면 정말 열정을 갖고 열심히 일하시고 활동의 결과물들이 큰 의미를 가지잖아요. 활동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활동가들도 좀 더 자기 자신을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회적 인식도 많이 개선되어야 하고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비전이나 꿈은 무엇인가요?

거창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난민 분야와 상담 분야의 전문가가 되겠다는건데요. 왜냐하면 오래 걸릴 거라서요(웃음). 상담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니까 꾸준히 잘 쌓아갔으면 좋겠고요.

꿈이라기보다는 바람인데 앞으로의 여정을 조금 더 즐겁게 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꽃 피우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요. 저라는 존재를 꽃 피워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전히 현실에 대한 고민도 많고 지치는 날도 있지만 과정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내 길을 찾아가는 즐거운 여정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참고

피난처 인스타그램 @refugepnan

피난처 홈페이지

글&인터뷰 나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