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Gap year)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잠시 멈추어,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 점검하는 시간을 말하죠. ‘잠시 멈춤’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 1970년대생 X세대 활동가를 위한 갭위크 기간이 마련되었습니다.
X세대 활동가를 위한 회복과 전환의 시간 <70X갭위크>는 지난 6월 3박 4일간 남원시 산내면 일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충분히 쉬고 깊이 대화하며 각자 작은 결심과 다짐을 계획해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실천을 위한 활동지원금 30만원도 지원됩니다.
Q. 올해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출범 17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리고 싶네요. 소감이라고 할까요 감회가 어떠신가요?
사실 전장연은 출범식을 따로 챙기지는 않았어요. 선전전 500일, 1000일 이런 현장 투쟁 중심의 일정을 챙기죠. 집회에서 케익을 나누는 수준으로 챙기는데 올해는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을 다녀온 직후라서 약식 보고대회 형식으로 출범 17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노들과 전장연 활동으로 10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한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시간들로 잘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장연은 이번 파리 특사단 활동으로 국제협력, 국제 활동을 어떻게 시작해볼 수 있을까 논의를 시작하고 있어요. 사실 좀 두렵기도 하지만 국제 활동을 바라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전장연 활동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평생교육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센터에서 오래 일을 했는데 좀 지겨웠어요(웃음). 그러다 장애인복지관에서 평생교육 업무를 하게 되면서 사회복지사 교육을 맡았어요. 그러면서 전장연을 알게 됐고요. 제가 되게 많은 강좌를 개설했는데 거의 유일하게 폐강된 게 김도현 선생님 강좌였을거에요(웃음). 그 때가 장애학이라는 단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는데 그게 15년 전이니까 그때만해도 잘 모를때였죠.
장애 분야에서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처음 일을 했어요. 처음으로 장애 당사자와 밀접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서비스 제공자 정도의 역할이었어요. 제가 기대했던 거랑 달라서 재미가 없었죠. 퇴사하고 고민하던 시점에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노들이었고 박경석 대표도 알게 됐죠. 노들야학에서 자원활동교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들장애인자립센터로 넘어와 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첫 발을 들이게 되었네요(웃음).
[김필순 활동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장애 분야에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사범대 출신이긴한데 전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거든요(웃음). 친구가 특수학교로 교생 실습 간다고 얘기하는데 저도 너무 가고 싶은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 교생실습을 했는데 그때 장애를 처음 만났고 너무 좋았어요.
Q. 왜 그렇게 좋으셨어요?(웃음)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가고 싶더라고요. 대학때까지만해도 사실 제 주변에서 장애 경험이 없었는데 그냥 당연히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습준비하면서 친구들이 첫 정장을 살 때 저는 제일 좋은 체육복을 입었죠(웃음). 같이 신체활동한 것도 즐거웠고 아직도 그 때 만났던 학생들 얼굴도 기억나요. 지금도 장애 당사자들을 만나는게 좋아요. 근데 계기가 뭐였을까 모르겠네요. 그냥 너무 쉽게 너무 당연한 느낌으로 저한테 왔었던 것 같아요. 저는 장애운동을 좋아합니다(웃음).
Q. 운명적인건가요(웃음). 최근 전장연은 어떤 의제에 집중하고 있나요?
‘전장연’하면 이동권, 박경석 대표를 주로 떠올리시겠지만 이동권 말고도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있어요. 탈시설이 핵심이고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노동과 교육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죠. 탈시설과 교육권, 노동권도 저희가 계속 싸워가면서 확장해야 하는 의제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으로 전장연 이름이 알려진건 2021년 12월 지하철 타기 행동이죠. 사실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해오던 활동인데 아침 출근 시간에 하게 되면서 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지는 경험을 했죠. 물론 축적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고요.
Q. 전장연 활동이 이동권 의제로만 부각되는 게 약간 부담도 되시나요?
저희도 전장연의 운동이 이동권으로 갇히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운동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비장애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게 이동권이고 우리가 다른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의제가 한정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다른 활동가가 해주셨을 때 놀랐어요. 제가 그 부분을 두려워했던 활동가 중 한명이었거든요.
Q. <공익활동가 70X 갭위크>라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신청하게 되셨나요?
동행 사업은 늘 챙겨보죠. 조직에서 복리후생을 다 챙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보니 활동가들에게 정보 제공하는 차원으로 열심히 보고 신청하게 하죠. 보통 전장연 활동가들이 많이 하는게 휴가비 지원하고 건강검진 신청을 많이 해요. 막상 저는 이번이 처음 신청해보는거였어요(웃음). 전장연 다른 활동가들이 많이 받았으면 해서 그동안 동행 사업 신청해본 적은 없는데 ‘70X‘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조직 경험치는 각자 다르겠지만 저랑 비슷한 나이의 다른 활동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고 딱 저한테도 그런 고민을 나누는 게 필요한 시기기도 했고요.
저는 조합원 기간이 엄청 긴데 한번도 신청 안했으니까 신청만 하면 무조건 될 줄 알았어요(웃음). 팀에도 미리 공지해두고 일정을 비워뒀는데 똑 떨어졌어요. 막판에 추가 연락을 받고 가게 된거라 더 기억에 남네요.
[70X갭위크 3기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X세대인 1970년대생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활동 경험이 10년 정도 되는거지만 졸업하고 바로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은 거의 20년차시더라고요. 활동기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 7년 정도 넘어가면 비슷해지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15명이 모였는데 절반 정도는 활동을 계속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숙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또 조직적인 상황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일을 중단한 분들도 있었는데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던 것 같아요.
Q. 필순님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가셨나요?
젊은 활동가들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저희 운동이 워낙 체력과 시간적으로 많이 쏟아붓는거라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조직 안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도 있는 시점이거든요. 그리고 내 판단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3박 4일 동안 많이 걷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이 시점에 장애 운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장연 사무처가 아닌 위치에서도 활동을 해볼 수 있겠다, 그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오히려 오래 함께한 동료 활동가들과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들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깊게 대화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얘기들을 좀 주고받으면서 그런 것들이 되게 용기가 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고 제가 뭐 당장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결정할 때 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Q. <70X갭위크>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궁금해요.
우선 세끼를 다 먹었고요(웃음). 세끼를 다 먹기 쉽지 않잖아요. 다들 열심히 먹었고요.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은 같이 산책하고 걷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리산 둘레길을 3-4시간 걷기도 하고 자유 시간도 많았어요. 그때 그룹별로 움직이기도 하고요. 저녁시간에는 모닥불 앞에서 얘기하고 특히 환대의 시간이라는 저녁식사가 마련되었는데 아주 근사했어요.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또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모인 사람이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잘 구성되었고요. 뭔가를 채우려고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70X갭위크 3기 _지리산 노고단에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15명이 모였다고 들었어요. 어떤 활동가들이 모였나요?
구성원들이 다양했어요. 장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고요. 분야나 지역도 다 다르고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조직 형태도 다양하고요. 참여자 선정에 이런 부분도 심사숙고하신건가 싶었고요(웃음). 그래서 더 이야기 나누기가 쉬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분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장점도 있지만 이야기 나누기 어려운 것들도 당연히 있잖아요. 사실 시민사회단체가 다들 허리 활동가가 없다고 했을 때 이런 자리들이 허리 활동가들이 좀 숨통을 좀 튈 수 있는 시간들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Q. 삶의 전환과 회복을 위한 지원금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은 시도를 계획하셨나요?
처음에는 평소에 운동을 계속 하고 있기도 하고, 하고 있던 걸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멋진 트레이닝복을 사보겠다! 이런 식으로 쉽고 간단하게 쓰려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 간식 먹으면서 있는데 한분이 제 팔을 딱 잡으시더니 정말 뜬금없이 “선생님은 춤을 배워보면 좋겠어요.”하시더라고요. 약간 머리에 한 대 툭 맞는 느낌이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더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뭔가 충분하더라고요. 제가 춤은 정말 못하는 것 중에 하나거든요. 혹시 춤 잘 추세요?(웃음)
Q. 춤도 다양하잖아요(웃음)
춤을 배워보기로 하고 무슨 춤을 배워야 되나 그 과제를 다시쓰는데 훌라가 생각났어요. 주변에 훌라를 배우는 분이 계셨거든요. 너무 재밌다는거예요. 사실 그 분은 훌라 말고도 그런 재능이 굉장히 많은 분이긴한데(웃음). 훌라를 추고 있으면 너무 평화로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활동은 거칠고 어렵고 현장 투쟁은 힘든데 춤을 추고 있을 때 내가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는거예요. 그 분이 저한테 훌라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때는 두렵기도 하고 제가 못하는거라 제가 지금보다 평화가 필요해지면 배우겠다고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게 생각났어요. 제가 생각해봐도 제 성격이나 잘할 수 있겠냐 생각했을 때 훌라는 아니었는데 훌라를 하기로 했죠.
Q. 훌라를 배워보니 어땠어요?
두 곡을 배웠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못하는거예요. 너무 못하고, 잘할 생각도 없고, 잘해보려는 의지도 없고요. 잘할수도 없고(웃음).
저희가 살면서 늘 잘하는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잘할 자신도 없고 잘할 수도 없는 걸 해보는 경험이 엄청 새롭더라고요. 너무 새로웠어요. 내가 이렇게 잘하려고 애를 전혀 안쓰는게 웃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가는게 즐거워요.
훌라가 동작이 부드럽고 천천히 움직이고 아름답거든요. 근데 저는 정말 하나도 부드럽지 않고 빨리하는걸 잘해서 천천히 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제 속도로는 못하겠어서 옆에 선생님 속도로 조금씩 동작을 해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조금씩 해서 제 목표는 10곡까지 해보는거에요. 이렇게 계속 잘해볼 마음이 없는 상태로(웃음).
Q. 그래도 계속하게 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시니까 매력적인 춤인 것 같네요.
춤 출 때 되게 행복해요. 그 순간 되게 평화롭다는 생각이 생기더라고요. 꼭 춤이 아니더라도 잘할 마음이 없는걸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에요.
Q. 70X 갭위크에서 발견한 내 일과 삶의 전환의 키워드로 <응원>을 꼽아주셨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3박 4일이 서로 응원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들로 잘 채운 것 같아요. 힘든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응원을 많이 받았고요. 우리 모두가 최소 10년 넘게 각자의 분야에서 있다는 우리 자체가 응원이 될 수 있고 우리도 응원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늘 응원을 주고 챙겨주는 위치에 있다가 서로 당신이 더 잘살았으면 좋겠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 응원을 나누는 시간이어서 우리 모두에게 응원이 필요하구나 싶었죠.
Q. 70X 활동가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일 중심적인 사람이라 관계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각자의 역할을 잘 나누고 협력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죠. 그런데 최근에 단순히 친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활동 속에서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는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장애 운동 밖의 동료들도 만나보려고 애를 썼어요.
장애 운동과 다른 분야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고,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야 운동을 더 길게, 지속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활동을 오래 지속하려면 함께 고민을 나눌 동료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장애 운동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되게 많이 보이는 삶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혜화역에 줄 서있는 사람들 ©김필순 활동가]
이 사진은 혜화역 아침 8시 모습이에요. 저희는 맞은편에서 선전전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출근하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저 줄에 휠체어 탄 사람 몇몇이 아무렇지 않게 같이 있으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모습을 만들고 싶어서 장애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일상에서 장애인이 당연하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꿈꾸며 계속 활동하려고 합니다.
[참고]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활동 보기
글&인터뷰 나혜수
Q. 올해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출범 17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먼저 드리고 싶네요. 소감이라고 할까요 감회가 어떠신가요?
사실 전장연은 출범식을 따로 챙기지는 않았어요. 선전전 500일, 1000일 이런 현장 투쟁 중심의 일정을 챙기죠. 집회에서 케익을 나누는 수준으로 챙기는데 올해는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을 다녀온 직후라서 약식 보고대회 형식으로 출범 17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저는 노들과 전장연 활동으로 10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한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시간들로 잘 가져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장연은 이번 파리 특사단 활동으로 국제협력, 국제 활동을 어떻게 시작해볼 수 있을까 논의를 시작하고 있어요. 사실 좀 두렵기도 하지만 국제 활동을 바라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전장연 활동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평생교육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백화점이나 마트 문화센터에서 오래 일을 했는데 좀 지겨웠어요(웃음). 그러다 장애인복지관에서 평생교육 업무를 하게 되면서 사회복지사 교육을 맡았어요. 그러면서 전장연을 알게 됐고요. 제가 되게 많은 강좌를 개설했는데 거의 유일하게 폐강된 게 김도현 선생님 강좌였을거에요(웃음). 그 때가 장애학이라는 단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는데 그게 15년 전이니까 그때만해도 잘 모를때였죠.
장애 분야에서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처음 일을 했어요. 처음으로 장애 당사자와 밀접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서비스 제공자 정도의 역할이었어요. 제가 기대했던 거랑 달라서 재미가 없었죠. 퇴사하고 고민하던 시점에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았는데 그게 노들이었고 박경석 대표도 알게 됐죠. 노들야학에서 자원활동교사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들장애인자립센터로 넘어와 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첫 발을 들이게 되었네요(웃음).
[김필순 활동가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장애 분야에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사범대 출신이긴한데 전 교사가 될 생각은 없었거든요(웃음). 친구가 특수학교로 교생 실습 간다고 얘기하는데 저도 너무 가고 싶은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 교생실습을 했는데 그때 장애를 처음 만났고 너무 좋았어요.
Q. 왜 그렇게 좋으셨어요?(웃음)
모르겠어요. 저는 너무 가고 싶더라고요. 대학때까지만해도 사실 제 주변에서 장애 경험이 없었는데 그냥 당연히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습준비하면서 친구들이 첫 정장을 살 때 저는 제일 좋은 체육복을 입었죠(웃음). 같이 신체활동한 것도 즐거웠고 아직도 그 때 만났던 학생들 얼굴도 기억나요. 지금도 장애 당사자들을 만나는게 좋아요. 근데 계기가 뭐였을까 모르겠네요. 그냥 너무 쉽게 너무 당연한 느낌으로 저한테 왔었던 것 같아요. 저는 장애운동을 좋아합니다(웃음).
Q. 운명적인건가요(웃음). 최근 전장연은 어떤 의제에 집중하고 있나요?
‘전장연’하면 이동권, 박경석 대표를 주로 떠올리시겠지만 이동권 말고도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있어요. 탈시설이 핵심이고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노동과 교육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죠. 탈시설과 교육권, 노동권도 저희가 계속 싸워가면서 확장해야 하는 의제라고 생각해요.
대중적으로 전장연 이름이 알려진건 2021년 12월 지하철 타기 행동이죠. 사실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한 이후로 계속 해오던 활동인데 아침 출근 시간에 하게 되면서 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지는 경험을 했죠. 물론 축적된 투쟁의 결과이기도 하고요.
Q. 전장연 활동이 이동권 의제로만 부각되는 게 약간 부담도 되시나요?
저희도 전장연의 운동이 이동권으로 갇히는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운동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비장애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게 이동권이고 우리가 다른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의제가 한정된다는 생각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다른 활동가가 해주셨을 때 놀랐어요. 제가 그 부분을 두려워했던 활동가 중 한명이었거든요.
Q. <공익활동가 70X 갭위크>라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신청하게 되셨나요?
동행 사업은 늘 챙겨보죠. 조직에서 복리후생을 다 챙기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보니 활동가들에게 정보 제공하는 차원으로 열심히 보고 신청하게 하죠. 보통 전장연 활동가들이 많이 하는게 휴가비 지원하고 건강검진 신청을 많이 해요. 막상 저는 이번이 처음 신청해보는거였어요(웃음). 전장연 다른 활동가들이 많이 받았으면 해서 그동안 동행 사업 신청해본 적은 없는데 ‘70X‘가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조직 경험치는 각자 다르겠지만 저랑 비슷한 나이의 다른 활동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지 너무 궁금했고 딱 저한테도 그런 고민을 나누는 게 필요한 시기기도 했고요.
저는 조합원 기간이 엄청 긴데 한번도 신청 안했으니까 신청만 하면 무조건 될 줄 알았어요(웃음). 팀에도 미리 공지해두고 일정을 비워뒀는데 똑 떨어졌어요. 막판에 추가 연락을 받고 가게 된거라 더 기억에 남네요.
[70X갭위크 3기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X세대인 1970년대생 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활동 경험이 10년 정도 되는거지만 졸업하고 바로 활동을 시작하신 분들은 거의 20년차시더라고요. 활동기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한 7년 정도 넘어가면 비슷해지는 것들도 있는 것 같아요.
15명이 모였는데 절반 정도는 활동을 계속 할 것인지, 한다면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런 숙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또 조직적인 상황이나 개인적인 이유로 일을 중단한 분들도 있었는데 이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었던 것 같아요.
Q. 필순님은 어떤 고민을 가지고 가셨나요?
젊은 활동가들과 소통하는 것도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는 저희 운동이 워낙 체력과 시간적으로 많이 쏟아붓는거라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조직 안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도 있는 시점이거든요. 그리고 내 판단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3박 4일 동안 많이 걷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이 시점에 장애 운동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전장연 사무처가 아닌 위치에서도 활동을 해볼 수 있겠다, 그 시점은 언제가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오히려 오래 함께한 동료 활동가들과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들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깊게 대화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얘기들을 좀 주고받으면서 그런 것들이 되게 용기가 되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고 제가 뭐 당장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결정할 때 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Q. <70X갭위크>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됐는지도 궁금해요.
우선 세끼를 다 먹었고요(웃음). 세끼를 다 먹기 쉽지 않잖아요. 다들 열심히 먹었고요.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은 같이 산책하고 걷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지리산 둘레길을 3-4시간 걷기도 하고 자유 시간도 많았어요. 그때 그룹별로 움직이기도 하고요. 저녁시간에는 모닥불 앞에서 얘기하고 특히 환대의 시간이라는 저녁식사가 마련되었는데 아주 근사했어요.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또 이야기 나누고 그렇게 모인 사람이 이야기 나눌 수 있도록 잘 구성되었고요. 뭔가를 채우려고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70X갭위크 3기 _지리산 노고단에서 ©공익활동가 사회적협동조합 동행]
Q. 15명이 모였다고 들었어요. 어떤 활동가들이 모였나요?
구성원들이 다양했어요. 장애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었고요. 분야나 지역도 다 다르고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등 조직 형태도 다양하고요. 참여자 선정에 이런 부분도 심사숙고하신건가 싶었고요(웃음). 그래서 더 이야기 나누기가 쉬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분야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장점도 있지만 이야기 나누기 어려운 것들도 당연히 있잖아요. 사실 시민사회단체가 다들 허리 활동가가 없다고 했을 때 이런 자리들이 허리 활동가들이 좀 숨통을 좀 튈 수 있는 시간들이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Q. 삶의 전환과 회복을 위한 지원금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작은 시도를 계획하셨나요?
처음에는 평소에 운동을 계속 하고 있기도 하고, 하고 있던 걸 좀 더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멋진 트레이닝복을 사보겠다! 이런 식으로 쉽고 간단하게 쓰려고 했어요. 쉬는 시간에 간식 먹으면서 있는데 한분이 제 팔을 딱 잡으시더니 정말 뜬금없이 “선생님은 춤을 배워보면 좋겠어요.”하시더라고요. 약간 머리에 한 대 툭 맞는 느낌이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더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뭔가 충분하더라고요. 제가 춤은 정말 못하는 것 중에 하나거든요. 혹시 춤 잘 추세요?(웃음)
Q. 춤도 다양하잖아요(웃음)
춤을 배워보기로 하고 무슨 춤을 배워야 되나 그 과제를 다시쓰는데 훌라가 생각났어요. 주변에 훌라를 배우는 분이 계셨거든요. 너무 재밌다는거예요. 사실 그 분은 훌라 말고도 그런 재능이 굉장히 많은 분이긴한데(웃음). 훌라를 추고 있으면 너무 평화로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활동은 거칠고 어렵고 현장 투쟁은 힘든데 춤을 추고 있을 때 내가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는거예요. 그 분이 저한테 훌라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때는 두렵기도 하고 제가 못하는거라 제가 지금보다 평화가 필요해지면 배우겠다고 거절한 적이 있는데 그게 생각났어요. 제가 생각해봐도 제 성격이나 잘할 수 있겠냐 생각했을 때 훌라는 아니었는데 훌라를 하기로 했죠.
Q. 훌라를 배워보니 어땠어요?
두 곡을 배웠거든요. 근데 제가 너무 못하는거예요. 너무 못하고, 잘할 생각도 없고, 잘해보려는 의지도 없고요. 잘할수도 없고(웃음).
저희가 살면서 늘 잘하는걸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열심히하려고 하잖아요. 근데 잘할 자신도 없고 잘할 수도 없는 걸 해보는 경험이 엄청 새롭더라고요. 너무 새로웠어요. 내가 이렇게 잘하려고 애를 전혀 안쓰는게 웃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가는게 즐거워요.
훌라가 동작이 부드럽고 천천히 움직이고 아름답거든요. 근데 저는 정말 하나도 부드럽지 않고 빨리하는걸 잘해서 천천히 하는 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제 속도로는 못하겠어서 옆에 선생님 속도로 조금씩 동작을 해보기도 하고요. 이렇게 조금씩 해서 제 목표는 10곡까지 해보는거에요. 이렇게 계속 잘해볼 마음이 없는 상태로(웃음).
Q. 그래도 계속하게 되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시니까 매력적인 춤인 것 같네요.
춤 출 때 되게 행복해요. 그 순간 되게 평화롭다는 생각이 생기더라고요. 꼭 춤이 아니더라도 잘할 마음이 없는걸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에요.
Q. 70X 갭위크에서 발견한 내 일과 삶의 전환의 키워드로 <응원>을 꼽아주셨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3박 4일이 서로 응원과 위로를 나누는 시간들로 잘 채운 것 같아요. 힘든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응원을 많이 받았고요. 우리 모두가 최소 10년 넘게 각자의 분야에서 있다는 우리 자체가 응원이 될 수 있고 우리도 응원이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늘 응원을 주고 챙겨주는 위치에 있다가 서로 당신이 더 잘살았으면 좋겠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런 응원을 나누는 시간이어서 우리 모두에게 응원이 필요하구나 싶었죠.
Q. 70X 활동가의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일 중심적인 사람이라 관계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각자의 역할을 잘 나누고 협력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개인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죠. 그런데 최근에 단순히 친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활동 속에서 나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는걸 많이 느꼈어요. 그래서 장애 운동 밖의 동료들도 만나보려고 애를 썼어요.
장애 운동과 다른 분야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싶고,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꼭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야 운동을 더 길게, 지속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활동을 오래 지속하려면 함께 고민을 나눌 동료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활동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장애 운동을 되게 좋아해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되게 많이 보이는 삶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혜화역에 줄 서있는 사람들 ©김필순 활동가]
이 사진은 혜화역 아침 8시 모습이에요. 저희는 맞은편에서 선전전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건너편에 출근하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고요. 저 줄에 휠체어 탄 사람 몇몇이 아무렇지 않게 같이 있으면 너무 아름다울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모습을 만들고 싶어서 장애 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일상에서 장애인이 당연하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꿈꾸며 계속 활동하려고 합니다.
[참고]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 활동 보기
글&인터뷰 나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