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 [조합원 인터뷰-여행 지원] ③ ‘종종 만나 걷고, 웃고, 떠들 수 있다면'_오리 활동가(전쟁없는세상)

<공익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은 분주한 일과와 일상을 보내는 공익활동가의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쉼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본 사업은 신청자의 목표와 목적에 따라 세 개의 사업[여행(단체, 개인), 여가, 땡땡이 학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23년 지원사업을 갈무리하며 사업에 참여한 공익활동가들의 쉼표는 어떤 모양이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의 오리를 만나 영국, 핀란드, 프랑스를 돌며 오랜 동료들과 조우했던 순간들에 대해 들었습니다.

※ 본 지원사업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현대자동차 지정기탁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정민 활동가(활동명 오리)는 전쟁없는세상에서 비폭력 프로그램 담당 스태프로 11년째 근무하고 있다. 비폭력 프로그램을 통해 군사주의 저항 활동을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지치지 않으며 할 수 있을지 운동 자체와 방법론, 개인과 조직의 다이내믹 역학을 포괄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평화인권연대와 두레방에서 일하며 군대와 군사주의를 둘러싼 폭력에 저항하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영국 유학 이후 10년이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어떻게 하면 앞으로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이다.

 

Q. 공익활동 경력이 하나의 결로 이어지고 있어요. 경력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대학교 다닐 때, 학교 선배들이 노동운동을 위해 공장 위장 취업했다는 걸 전설처럼 듣던 시절이었어요. 80년대 이후 제도적 민주화 자리를 잡으며 위장 취업은 사라졌죠. 노동운동에 뜻이 있던 사람들은 노무사 시험을 많이 보기도 했어요.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의 혁명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말도 돌았어요. 환경운동, 여성운동, 문화운동 등 다양한 부문 운동으로 진출하던 시기였어요.

평화인권연대를 만들 때, 당시 전쟁과 폭력에 관련된 단체는 없었어요. 각자 생각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뜻 맞는 동료들과 의기투합해서 평화인권연대를 만들었죠. 주로 기지촌에 기활을 많이 다녔어요. 징병 제도의 문제점들을 연구하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 협회도 방문하기도 하고요. 군 가산점제 논란이 있었던 시기여서 군 가산점제를 헌법 소원을 했었던 연세대 학생과 연대하기도 했어요. 군대, 군사주의와 폭력 관련한 전반적인 사회 문제점들을 알기 위해 많이 찾아다니고, 만났어요.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병역 거부와 관련된 문제였어요.

‘한겨레21’과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관련된 인터뷰 말미에 기자분이 어떤 다른 활동을 하고 있냐고 물어서 병역 거부 활동을 하기 위해 연구 중이라고 말했어요.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됐죠.

2000년대 초반부터 기나긴 병역 거부 운동이 시작됐어요. 2007년에 노무현 정부에서 대체복무를 인정해 준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었어요. 이제 10년 활동을 했으니까 조금 쉬면서 내 활동을 점검해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유학 준비를 했어요. 유학 준비하던 중 이명박 정부에서 못 해주겠다고 하는 상황이 됐죠. 고민하다가 학교에 붙어서 1년 6개 유학을 다녀와서 전쟁없는세상에 합류했어요. 병역 거부 캠페인을 한다는 점에서 평화인권연대와 비슷하지만, 저는 병역을 둘러싼 군사주의 전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어요. 아무래도 군 입영 통지서를 받는 건 남성들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캠페인을 하는 여성이 부딪치게 되는 군사주의의 다른 단면을 많이 보게 돼요. 여러 장벽에 부딪치면서 공부하고 돌아와서는 비폭력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어요.

전쟁없는세상에서 반상근을 시작하면서 두레방에서도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과거에는 한국인들이 기지촌 산업의 중심이었다면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는 이주 여성들이 기지촌에 일을 하러 들어왔어요. 두레방에도 언어를 할 수 있는 활동가가 필요해서 이주 여성 프로젝트를 담당해서 일하기도 했고요. 기지촌이 반드시 미군 기지 주변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군사주의와 민족주의의 모순이 겹쳐지는 비극적인 장소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해온 활동들은 군사주의라는 주제 하에 다 이어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Q. ‘폭풍 같은 행사’라고 예상했던 전쟁없는세상 20주년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궁금해요.

1년 내내 행사하게 됐는데 원래 의도는 아니었어요. 5월 15일이 세게 병역 거부의 날이에요. 전 세계 병역 거부 운동 단체들은 이날을 기념해서 여러 액션을 하고, 컨퍼런스도 개최해요. 전쟁없는세상은 병역 거부자들이 따로 만든 조직이어서 일부러 창립일도 5월 15일로 맞췄어요.

국제회의를 진행하고, 20년 동안 모아놓았던 자료로 전시회를 개최하는 게 원래 행사 목표였어요. 전쟁없는세상은 두 가지 이슈를 주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징병 제도를 고민하고, 병역 거부자들을 지원하는 이슈, 또 하나는 무기 거래 감시하는 이슈가 있죠. 특히 한국에서 수출되는 무기들을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두 가지 이슈를 묶어서 국제회의를 하려고 했어요. 병역 거부 이슈 관련된 해외 손님들이 5월 15일에 자국 행사로 바빠서 못 왔어요. 5월에는 무기 거래 이슈로만 국제회의를 진행했어요. 동행의 도움을 받아서 잠시 쉬고 와서 11월에 병역 거부 이슈로 국제회의를 진행했어요.

며칠 전부터 상반기에 했었던 전시회를 온라인으로 돌려서 진행하고 있어요. 온라인에서는 오프라인에서 했었던 전시를 다 볼 수는 없지만, 아카이브 테이블이라고 해서 20년 동안의 활동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를 온라인으로 구현했어요.

 

Q. 여행을 떠날 때, 마음먹는 게 가장 어렵기도 해요. 지원 사업이 어떤 촉매제가 됐을지도 궁금해요.

사실 결심은 그전에 했어요. 20주년 행사가 끝나면 여행을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디 도움을 받을 걸 생각하지는 못했죠. 원래 인생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라서 일단 저지르고 보는 편이에요.(웃음) 계획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했었어요. 주변에서 재충전 지원 사업에 넣어보라는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아마 지원하지 않았다면 즉흥적으로 다녀왔을 텐데 보다 계획적으로 다녀올 수 있었어요.

 

Q. 유학했던 영국에 다시 도착했을 때 어떠셨나요?

아주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없었어요.(웃음) 영국에서 제일 길게 머물렀어요. 영국은 아무래도 유학했던 곳이라 친구가 많아요. 지금은 돌아가신 『여성 총 앞에 서다』(2009)의 신시아 코번 선생님이 영국에서 ‘Woman In Black’ 활동을 하셨어요. 코벤트리에서 학교 다니고 나서 런던에서 War Resisters’ International (WRI)에서 6개월 동안 인턴 하면서 ‘Woman In Black’에 자주 나갔었어요. 매주 검은 옷을 입은 여성들이 런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트라팔가르에서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해요. 전쟁의 희생자들을 기리면서요. 이번에도 당시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WRI는 지금 사무실이 없어요. 코로나를 거치면서 사무실 없이 운영되는 조직이 되었어요. 일했던 사무실에 가보고 싶었는데 가볼 수 없어 아쉬웠어요. 영국의 시민 단체 대부분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에요. 월세가 워낙 높으니까 재택으로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고정 사무실이 사라져서 임대료를 다른 활동에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어떤 문제가 생겨도 바로 협업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활동가들이 코로나를 겪으며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은 듯했어요. 인턴 할 때 있었던 활동가 중 남아 있는 분은 없고, 다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졌기도 하더라고요.

 

Q. 오리님의 재충전에서 수다 떨기가 굉장히 중요한 일인 듯해요. 핀란드와 프랑스 일정은 어떠셨나요?

아마 사람마다 다를 텐데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핀란드에서는 평화학을 공부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어요. 병역 거부자 중 한 명이에요. 핀란드에서 병역 거부 운동을 하고 있는 분 중 한 명이 올해 전쟁없는세상 20주년 행사에 오기도 했어요. 핀란드 단체와 긴밀한 연대가 있어요. 핀란드에서는 친구 학교 기숙사에서 같이 지내면서 걷고, 수다 떨면서 보냈어요. 어떤 공부를 하고 있는지 듣고, 한국의 상황은 어떤지 전해줬죠.

프랑스에서는 이예다 씨를 만나고 왔어요. 10년째 파리에서 살고 있어요. 병역 거부자 중 난민 인정된 분들이 캐나다와 호주에도 있는데, 이분들은 병역거부자이자 성소수자이세요. 난민 인정 사유를 살펴보면 병역 거부보다는 성소수자로서 한국에서 살기 어려운 점을 인정한 점이 더 커요. 파리의 이예다 씨는 자신의 평화주의적 신념이 집총과 군복에 반대되는데 한국은 이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단일 사유로 난민 인정이 됐어요.

7년 전, 이예다 씨가 난민 인정을 기다리던 중에 프랑스에 가서 만난 적이 있어요. 꽤 시간이 지났으니 다시 한번 만나고 보고 싶었어요. 사는 게 누구나 다 비슷하게 힘들지만 예다씨도 여러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셨더라고요. 수다를 통해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이예다 씨가 프랑스 난민으로서 겪었던 일에 대한 출판 계획도 있어서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지도 이야기 나눴어요. 유럽에서 활동 동지이자 인생의 친구들과 만나 걷고, 대화를 나눴어요. 이러한 수다가 저에게 굉장히 큰 힘이 돼요.

 

Q. 여행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듣고 싶어요.

여행을 다녀오면 일단 정리가 돼서 좋아요. 활동을 하다 보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항상 바빠요. 일을 마무리하기는 하지만, 마무리와 동시에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하죠. 여행을 다녀오면 천천히 시작할 수도 있어요. 어떤 점에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도 들어요.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어서 이러한 쉼, 공백이 굉장히 좋아요.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호흡을 생각했을 때, 2, 3주 정도 쉬는 게 더 길게 쉬는 것보다 더 큰 도움이 돼요. 하나의 일을 다 끝내고 갔으니까 새로 시작하는 일은 좀 더 제 페이스에 맞게 다시 새로 시작할 수가 있었죠. 공익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이 활동가들의 건강에 큰 도움이 돼요. 지원금으로 파리에서의 숙소를 해결했어요. 덕분에 비교적 편한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어요.

 

Q. 만약 다시 지원사업에 선정된다면 여행해 보고 싶은 나라가 있는지 궁금해요.

몇 년 주기로 프랑스에 가보고 싶어요. 이예다 씨는 한국에 못 돌아오니까 방문해서 또 수다를 떨고 싶어요. 이예다 씨의 경험이 개인에서 멈추지 않고, 공공 자산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몇 년 후에 다시 기회가 되면 이예다 씨에게 가는 걸 제일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Q. 공익활동가에게 ‘동행’이란?

주변 활동가 중 누가 아프다거나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면 일단 동행 들어가 보라고 해요. 인생을 살면서 예기치 않게 부딪치는 일들이 있어요. 4년 전, 희귀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았을 때도 동행에서 입원비를 지원해 주신 적이 있어요. 비용 지원도 있지만, 어디 가서 힘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든든한 느낌이 있어요. 3주 동안 입원해 있으면서 동행 메일을 썼어요. 동행이 출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부담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혹 지원을 못 해 주셔도 괜찮다고 구구절절 썼어요. 당시 동행에서 답장받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냐며 너무 속상하다고, 걱정하지 말고, 잘 논의해서 곧 다시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어요. 활동가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려는 느낌을 받는 조합원들이 많을 거예요. 동행 가입하라고 주변에 정말 많이 말해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도움도 커요. 당시 메일 받고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Q. 활동가로서의 목표에 대해도 듣고 싶어요.

10년간 활동하고 나서 유학을 다녀왔어요. 이제 그 뒤로 또 10년이 흘렀어요. 가능하면 잠시 전쟁없는세상 활동을 쉬고 공부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잘 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이 어디 가지 않겠지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건강하게 오래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전쟁없는세상의 활동 목표가 어느 정도는 이뤄지는 시점이에요. 병역 거부 측면에서는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됐어요. 물론 도입된 제도를 개선할 여지가 많지만요. 가자지구 분쟁 이후 이스라엘로 더 많은 한국산 무기가 판매가 되고 있어요. 주로 소형 무기지만, 무기 수출에 제동을 거는 게 장기적인 목표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