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인터뷰-여가 지원] ② ‘더 잘 듣기 위해서'_파랑 활동가(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공익활동가 재충전 지원사업>은 분주한 일과와 일상을 보내는 공익활동가의 지친 몸과 마음을 돌보고,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쉼을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본 사업은 신청자의 목표와 목적에 따라 세 개의 사업[여행(단체, 개인), 여가, 땡땡이 학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본 지원사업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 현대자동차 지정기탁 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김현지 활동가(활동명 파랑)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에서 일하고 있다. 파랑은 자신을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반려인이자 반성폭력 운동을 하고,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게으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개와 다르게 일상을 단단하게 지키기 위해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보내고 있는 찐 활동가였다. 파랑은 배구, 수영, 골프, 서핑, 보트, 스피드 스케이팅, 스쿠버 다이빙, 러닝까지 매번 새로운 운동에 도전하며 급진적 자기 돌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자신과 같은 활동가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성폭력 없는 세상이 되어 퇴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다.


Q. 어떻게 처음 공익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해요.

고등학교 1학년, 도덕 선생님이 관악사회복지에서 활동하고 계셨어요. 처음에는 대학입시를 위한 봉사활동시간을 받으려고 갔었어요. 막상 활동해보니까 정말 재밌더라고요. 돌봄이 필요한 지역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과후 학교 운영했어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던 시기여서 학교가 일찍 끝나면 관악사회복지에 가서 수업을 운영하고, 밥도 만들어 먹고, 집에 데려다줬죠. 다른 사업으로는 관악구에 청소년 밴드가 많은데 밴드들이 공연할 수 있는 기회는 적어요. 밴드들이 콘서트를 열어서 모금도 진행했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입학이 아니라 바로 취업했어요. 취업했을 때는 일이 바쁘다 보니 자주는 못 가고 가끔 활동했어요. 그렇게 2~3년쯤 일하다가 대학에 갔죠. 대학 수업 조별 과제에서 만난 친구에게 지역으로 귀촌한 선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선배가 영화감독인데 본인 영화를 틀 곳이 없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어요. 친구와 선배를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감독 선배가 본인 논밭이 넓으니까 여기서 영화제를 직접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죠. 학교 다니면서 영화제 자원 활동을 많이 했었거든요. 3년 동안 전북 완주에서 ‘너멍굴 영화제’를 운영했어요.

 

Q.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도 궁금해요.

이전부터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울 YWCA에서 대학생 인턴을 하기도 했는데, 소년원 있는 여성 재소 청소년 멘토링 사업을 담당했어요. 멘토 연결해 주고, 친구들이 원하는 책이나 추천 도서를 보내주는 일이었어요. 자원활동가에 비해 재소 청소년이 많아서 대부분의 편지를 직접 썼죠.(웃음) 힘들기도 했지만, 친구 고민 들어주듯이 재밌게 일했어요. 4개월 동안 서울 YWCA에서 일했고, 그때 사람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영화제도 이 기간에 시작했고요. 영화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완주로 귀촌했어요. 너멍굴 영화제를 마무리하고 나서는 완주문화재단에서 경력을 이어갔어요.

완주문화재단에서는 문화 다양성 사업을 담당해서 이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을 했어요. 특히, 지역 이주 여성들은 고부갈등이 심한데, 이주 여성들의 국가 전통 음식을 같이 해 먹는 활동도 했죠.

농촌에는 이주 여성과 결혼하는 한국 남성들에게 금전 지원이 있는데 반해 한국 여성들에게는 어떤 지원도 없었어요. 지금은 바뀐 걸로 알고 있지만, 이러한 결혼 지원 사업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문화재단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이러한 충격과 더불어 향수병에 걸렸어요. 내 고향은 서울이구나 생각하며 완주 생활을 정리했어요.

돌아왔을 때, 한창 ‘N번방 사건’이 이슈였어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에서 계약직을 많이 뽑더라고요. 입사해서 피해 영상물 모니터링하고 삭제하는 업무를 했어요. 하루에 2천 건씩 삭제하는데도 계속 생겨났어요. 여러모로 지쳐가다가 한국성폭력상담소로 이직하게 됐어요.

 

Q. 열림터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여성주의상담팀으로 입사했어요. 피해자들의 의료적 지원, 법률적 자문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대응 논의까지 담당했어요. 해당 사건이 반성폭력 운동으로서 메시지를 낼 수 있다면 공론화 지원도 하고요. 법률 지원할 때는 재판에 제출할 의견서를 같이 쓰기도 하고, 변호사 미팅 및 법정 모니터링도 같이 해요. 피해자는 기본적으로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도 돼요. 피해자가 모니터링을 직접 가기 어려운 현실도 있어서 저희가 대신 가서 모니터링을 하며 피해자의 불안을 줄이려고 해요. 피해자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라고 하면 판사들의 자세가 좀 달라지기도 하고요.

2년 정도 상담팀으로 일하다가 지금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로 왔어요. 열림터는 성폭력 피해자 중 주거 불안이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분들에게 보호처를 제공하는 곳이에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통계를 살펴보면 친족 성폭력이 생각보다 큰 부분을 차지해요. 이런 경우 집에 있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쉼터 위치 자체가 비밀이고요. 쉼터에 계신 분들이 아동이거나 미성년자인 경우가 많아요. 활동가들이 당직 근무를 하며 학교에 보내고, 밥도 같이 먹으며 24시간 운영하고 있어요.

 

Q. 지원서에서 ‘돌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고등학교 때, 활동가 언니가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때 처음 듣게 됐어요. 상담팀에서 일할 때는 10시부터 6시까지 상담 시간에만 피해자 지원을 했다면 쉼터에서는 24시간 같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돌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요. 내가 어디까지 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성장과정에서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생각도 많이 해요. 활동가로서 어떻게 해야 될까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한국성폭력삼당소 이사님이 강의에서 ‘급진적인 자기돌봄’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항상 돌봄의 영역은 항상 여성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을 돌보기 전에 자신을 더 적극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취지 말씀이었어요. 타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나부터 잘 돌봐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Q. 자기 돌봄을 위해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도 궁금해요.

규칙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요. 10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나고, 8~9시간은 자려고 해요. 일어나면 청소하고, 고양이를 돌보고, 요가를 하죠. 아침밥을 챙겨 먹고, 수영에 가요. 살기 위해서 하고 있어요.(웃음) 출근도 하고, 점심 먹고 나서는 꼭 30분씩 산책을 해요. 그리고 정시 퇴근을 하려고 노력하죠. 세 끼를 잘 챙겨 먹고요. 이러한 루틴을 잘 지키는 게 저의 자기 돌봄인 것 같아요.

 

Q. 재충전 지원사업에 대해 어떻게 처음 알게 됐는지 궁금해요.

뉴스레터를 아주 열심히 보는 사람이에요. 뉴스레터를 보고 신청했어요. 작년에는 강원랜드 숙박권 지원 사업으로 정선에 다녀왔어요. 카지노는 무서워서 금방 나왔지만, 조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통창이 있는 식당에서 길게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참 좋았어요.

활동가 월급은 아주 작고, 소중하잖아요. 아무래도 동행에서 지원받는 돈이 큰 도움이 되죠. 조합원비와 후원비를 앞으로도 열심히 내야겠다고도 생각하고요. (웃음)

 

Q. 지원서에서는 필라테스로 지원했는데, 풋살을 하게 됐어요.

안 해본 운동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필라테스도 안 해본 운동이어서 지원서에 썼어요. 지금은 규칙적으로 살고 있지만, 지원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동네 필라테스 학원에서 7시 반에 등록하면서 아침형 인간이 되려고 했어요. 하다보니 필라테스가 생각보다 잘 안 맞더라고요.

그러다가 친구에게 여자 풋살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변경했어요. 원데이 클래스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학창시절에 항상 운동장은 남자아이들 차지였고, 여자들끼리만 운동장을 누빈 기억이 별로 없는데, 여자들끼리 뛰어다니면서 서로 잘했다고 칭찬하고, 소리 지르니까 정말 기분 좋았어요.

 

Q. 풋살을 하면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셨을지 여쭤보고 싶어요.

풋살은 팀플레이고, 많이 뛰어야 해요. 숨도 차고, 다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안 움직여요. 하다 보면 짜증이 나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배워보니 선수들의 축구 경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발과 다리 근육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게 풋살, 축구라는 걸 알게 됐어요. 클래스 특성상 매번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해야 해서 저는 낯을 좀 가렸는데 만약 팀을 꾸려서 하게 된다면 서로 끈끈해지겠다고 생각했어요.

 

Q. 지원 사업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었고, 또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은지 궁금해요.

소질 없는 운동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자체로 좋았어요. 앞으로도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아무튼 잠수』를 읽었는데 하미나 작가가 필리핀 보홀에서 한 달 동안 프리 다이빙 훈련하는 내용이에요. 만약 다른 활동을 한다면 나중에 프리다이빙도 하고 싶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5년 만근하면 한 달 재충전 휴가 주거든요. 그때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동행 재충전 지원사업에 신청하려고요.(웃음) 3년 채웠으니까 이제 2년 남았어요. 그리고 제과, 제빵을 배워서 비건 베이킹도 하고 싶어요.

 

Q. ‘동행’은 활동가들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동행은 활동가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줘요. 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 활동가분들도 지원해 주는 것도 정말 좋고요. 적극적으로 다른 동료들에게도 추천해요. 동행에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니 당장 지원하지는 않아도 지원 사업을 살펴보는 것 자체로 든든해요. 미래를 계획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만약에 대학원 가면 활동가 교육 지원 사업에 지원하면 되겠다고 상상하기도 하죠.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동행에 소속되어 있어서 연결감과 소속감도 느끼게 해주는 것도 동행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아요.

 

Q. 활동가로서의 목표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올 한 해 진짜 힘들었어요. 팀이 바뀌고 적응하는 시기여서 그랬겠죠. 동료들의 사랑과 우정으로 극복한 한 해였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굉장히 소진 상태에요. 농담처럼 목표는 퇴사라고 자주 말하는데,(웃음) 저의 존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폭력이 없는 세상에서 더 이상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며 편안해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