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분야로 일반 기업을 다니다가 결혼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면서 대학 연구소에서 비영리 회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비영리 중간조직 설립 때부터 함께 하면서 비영리 회계와 행정 실무의 경력을 쌓았다.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경력 대신 새로운 업무 체계를 만들고, 그 체계가 안정되면 다음 자리로 옮겨가면서 경력을 쌓아 왔다. 최근 퇴사 한 후 1년 동안은 채용시장과 중장년 지원제도를 직접 경험하며 전산 세무와 데이터 활용 교육을 듣고 있다. 다음 일로는 영리와 비영리 분야로 구분짓기 보다는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중이다.
결혼 후 서울로 이주, 비영리회계를 처음 접하다
2006년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가 두 달 만에 그만두고, 대학 4학년 말쯤 일본으로 전산 분야 인턴 프로그램 갔다가 정규 채용이 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그 당시 경험으로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나 보다’ 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이후 회계 분야로 가려고 하다가 신생회사 비서 업무로 취직했는데, 팀장 역할까지 하면서 여러 실무를 함께 맡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월급이 세 달 정도 밀려 직원 네 명 정도를 데리고 사장한테 여러 번 찾아가 밀린 급여를 받아낸 경험도 있다. 그후 선박회사 경리로 들어가 2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곳에서는 비교적 편하게 잘 지냈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부산 사투리가 심해서 구직 과정에 겪은 차별이다. 경리나 회계 업무를 하면 전화를 받아야 하니 사업주가 말투를 고려할 수는 있었겠지만,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 무척이나 상처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고려대학교 연구소에 채용이 됐고, 그때 처음으로 비영리 회계를 접했다. 연구비를 정산하고 서류를 갖추며, 지출 규정에 맞지 않는 부분은 교수님들에게 설명하는 일이었다. 정해진 규칙대로 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증빙을 정리하고, 남은 예산을 확인하는 일을 배웠다. 연구소 사업이 네 달 만에 종료되면서 함께 일하던 분의 제안으로 연세대학교의 환경 관련 연구소로 옮겨 팀장을 2년 정도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체계를 만들다
연구소에서는 프로젝트 참여 인건비로만 책정해서 급여가 지급되다보니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경력 인정이 되지 않는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어서 퇴사를 결정했다.
2013년 무렵 사단법인 시민에서 회계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직원이 세 명 정도 있는 조직 이니 살림살이를 맡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새로 만들 지원센터를 준비하기 위한 채용이었다. 센터 설립이 확정되기 전이라 정식 출근 전까지 몇 달 동안 필요할 때마다 불려가 준비를 도왔다. 예산을 짜고, 제출 서류를 만들고, 다른 기관을 찾아가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매일 일한 것은 아니지만 정식 급여 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불안하긴 했지만 함께 준비하던 실장님과도 잘 맞았고, 힘들 때 둘이 자료를 만들고 여기 저기 찾아다닌 경험 때문에 계속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 연구소에서 쓰던 연구비 정산 양식과 증빙 체계를 가져와 센터에 맞게 적용했다. 연구소에서 하던 방식을 토대로 영수증 양식부터 서류 정리 방식까지 기초를 잡아 처음부터 세팅했기 때문에 나중에 센터의 서류가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비영리 중간 지원 조직 회계는 처음이어서 다른 기관은 회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보고, 외부 활동도 하면서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구축하는 일을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체계를 세우고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당시의 활동은 뿌듯하고 좋은 활동으로 기억한다.
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설립되고 1년 반가량 일한 뒤 임신하면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결국 복귀하지 못했다. 몇 년 뒤 센터 회계 담당자가 건강 문제로 업무를 이어가기 어려워지자 다시 연락을 받아서 계약직으로 들어가 결산과 외부 회계감사를 마치고,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센터 문을 닫는 과정까지 있었다. 비품과 서류를 정리해 넘기고 마지막 문을 닫을 때까지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서는 ‘센터 문을 열고, 닫았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열정은 언제나 소진을 동반해 왔다
2023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비영리조직에 들어갔다. 이전 센터와 연구소는 정해진 예산을 규칙에 맞게 집행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이곳은 직접 사업을 운영하고, 대출 사업도 하고, 조합이기도 하고 각 자금을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통장도 많고 구조도 복잡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회계 체계를 바꾸겠다고 제안을 하고 체계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나는 새로운 곳에 가면 내 역할을 온전히 쏟아붓고, 체계를 잘 만들어 놓았을 때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거의 어디를 가든 새로 구축하거나 판을 바꾸어 놓는 편이다. 그렇게 열정을 쏟고 나서 2년 일하고 그만뒀다. 마지막 직장을 거치면서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쏟으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다시 일하면 타고난 성향 때문에 또 몰입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평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개척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커진다. ‘너와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하는데, 그 무게가 늘 버거웠음에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는 방식이였다. 이제는 그런 방식에 멈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불안하였던 전환의 시간들
퇴사 후 처음 한 달은 직장에 다닐 때 못했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병원도 다녔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가자 나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했다. 바로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는데, 당연히 될 줄 알았던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서 사회복지 분야로 바꿔볼까도 생각이 들었지만 자격증만 있고 실무를 모르니 먼저 회계 직무로 복지기관에 지원해 봤다. 면접을 보면서 조직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받아서 상상했던 현장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사회복지 실무교육 과정에도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교육을 통해 현장이 나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운영기관은 곧바로 취업할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교육을 보는 당사자와 취업 실적을 보는 기관의 관점이 달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사회복지 분야로 전환하기보다 내가 잘하는 회계를 더 깊게 파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전산세무 국비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교육을 들으면 자신감은 높아지지만, 실무보다는 자격증 취득에 치우친다는 아쉬움도 있다. 과정 이름에는 ‘실무’가 들어가도 실제로는 시험 준비가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적지 않은 국비가 들어가는 만큼 자격증뿐 아니라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상 하게된다.
직접 경험한 취업 정보의 길
잡코리아나 사람인, 고용24에서 내가 지원하려는 직무가 어떤 기술과 자격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본다. 우대사항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필요사항인 경우가 많다. 내가 부족한 항목이 있으면 ‘이걸 채워 놓으면 가능성이 높아지겠구나’ 판단하고 공부할 것을 정하는 편이다. 채용 정보는 고용24, 잡코리아, 사람인을 함께 보고, 사회복지사 채용은 관련 협회나 홈페이지를 보기도 하고, 교육정보는 고용24의 훈련과정 조회, 구청과 여성센터 홈페이지, 지역 블로그, 자격증 관련 홈페이지와 카페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한번 교육을 들으면 그 기관에서 후속 정보가 오기도 하고, 여러 사이트를 타고 들어가다가 새로운 과정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아는 사람은 찾아서 이용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보가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기 쉬운 구조라 생각한다.
도봉구의 50플러스 일자리 박람회에 가봤는데, 고령층과 단순노동·단시간 계약직 일자리 중심이었다. 이력서 상담도 받아봤지만 ‘잘 쓰셨다’는 말 외에 요즘 채용 흐름에 맞춰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언을 받지 못했다. 사진 촬영이나 퍼스널컬러 같은 행사는 있었지만, 실제로 취업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컨설팅은 부족했다. 50플러스 정책이 40~60대로 확대된다고 하지만, 40대 중반 이후부터 50대 초중반까지의 사람은 여전히 중간에 끼어 있다고 느낀다. 홍보는 많지만 실제 프로그램의 질이나 전문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연령대도 높은 시니어에게 치우쳐 있다. 고용24에서 훈련과정을 찾을 수 있지만, 국비교육은 IT나 전산처럼 젊은 층이 많이 선택하는 분야에 치우쳐 있다. 회계나 전산 세무 과정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참여하지만, 중장년이 선택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많지 않다. 또 취업하려는 분야와 직접 관련된 교육만 승인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실무에서는 회계뿐 아니라 엑셀이나 그래픽 같은 기술이 함께 필요할 수 있는데, 직종 코드를 하나 정하면 다른 분야 교육을 함께 듣기 어렵다. 중장년에게는 기존 경력을 보완할 여러 기술을 묶어 배우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전환의 시간, 자존감과 불안감을 관리하는 법
중장년에게는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분야가 아주 많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몇 개 분야를 집중해서 다루면 좋을것 같다. 채용정보, 실무교육, 자격증 시험 일정과 접수 방법을 한곳에 모아 계속 업데이트하면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자격증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자격증이 있구나, 나도 해볼 수 있겠구나, 집과 가까운 곳에서 교육을 들을 수 있구나’라는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 교육을 들으면서 계속 이력서를 넣는 것은 그 사이에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면 ‘나이가 많아서 아무도 나를 뽑지 않는구나’ 하며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무엇인가 배우고 있으면 ‘나는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면접에서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쉬고 있다면 마냥 쉬기보다 가볍게라도 교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교육에서 새로운 기회가 연결될 수도 있고,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감각도 생긴다. 나에게 공부는 단순히 자격증을 하나 더 얻는 일이 아니라, 취업 준비 기간의 불안과 자존감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기
이번에는 오래 다닐 생각이라 출퇴근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다니면 출근길부터 지치고, 회사에서 산뜻하게 일하기 어려웠다. 강북구·노원구·성북구·도봉구를 중심으로 보고 동대문구와 인접 지역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리나 회계 직무를 찾지만, 이 지역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심지어 이력서를 열어 보지 않는 회사도 많고, 1년 가까이 계속 같은 공고를 내는 곳도 있다. 나이가 많아지니 피드백이 잘 오지 않는 현실도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능력과 기술이 있어도 나이는 바꿀 수 없고, 내 경력을 받아줄 자리가 비어 있을 때만 들어갈 수 있으니 길이 상당히 좁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다음 회사에 들어가면 쉽게 그만두지 않고 오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예전보다 커지고 있다. 다음의 일을 고민하면서 영리와 비영리 중 하나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비영리에서 오래 일한 분들을 보면 자신의 가치와 방향이 아주 뚜렷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 저런 생각도 있을 수 있지’라고 계속 흔들리고 질문하는 편이고, 뚜렷함이 있어야 한 길을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영리 활동가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주변 사람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어 업무 체계를 만든 경험 역시 활동의 출발점 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활동가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회의 문제를 바꾸려는 사람인데 나는 범사회적인 문제보다 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제가 아끼는 사람이 편안 하기를 바라는 성향에 가깝기에, 사회적 통념이 잘못됐다고 스스로 판단해 앞장서기보다, 믿는 사람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편인것 같다. 비영리는 업무 밖의 이야기까지 많이 나누고 관계가 수평적인 반면 영리조직은 필요한 업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말하고 상하관계 경계가 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영리나 비영리보다는 업무의 경계가 분명하고 에너지를 고르게 쓸 수 있는 곳인지, 오래 일할 수 있는 곳 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려고 한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분야로 일반 기업을 다니다가 결혼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면서 대학 연구소에서 비영리 회계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비영리 중간조직 설립 때부터 함께 하면서 비영리 회계와 행정 실무의 경력을 쌓았다. 한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경력 대신 새로운 업무 체계를 만들고, 그 체계가 안정되면 다음 자리로 옮겨가면서 경력을 쌓아 왔다. 최근 퇴사 한 후 1년 동안은 채용시장과 중장년 지원제도를 직접 경험하며 전산 세무와 데이터 활용 교육을 듣고 있다. 다음 일로는 영리와 비영리 분야로 구분짓기 보다는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중이다.
2006년 일반 회사에 들어갔다가 두 달 만에 그만두고, 대학 4학년 말쯤 일본으로 전산 분야 인턴 프로그램 갔다가 정규 채용이 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 그 당시 경험으로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나 보다’ 하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이후 회계 분야로 가려고 하다가 신생회사 비서 업무로 취직했는데, 팀장 역할까지 하면서 여러 실무를 함께 맡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월급이 세 달 정도 밀려 직원 네 명 정도를 데리고 사장한테 여러 번 찾아가 밀린 급여를 받아낸 경험도 있다. 그후 선박회사 경리로 들어가 2년 정도 근무했는데, 그곳에서는 비교적 편하게 잘 지냈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서울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부산 사투리가 심해서 구직 과정에 겪은 차별이다. 경리나 회계 업무를 하면 전화를 받아야 하니 사업주가 말투를 고려할 수는 있었겠지만,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 무척이나 상처가 되었다.
그러던 중에 고려대학교 연구소에 채용이 됐고, 그때 처음으로 비영리 회계를 접했다. 연구비를 정산하고 서류를 갖추며, 지출 규정에 맞지 않는 부분은 교수님들에게 설명하는 일이었다. 정해진 규칙대로 쓸 수 있도록 안내하고, 증빙을 정리하고, 남은 예산을 확인하는 일을 배웠다. 연구소 사업이 네 달 만에 종료되면서 함께 일하던 분의 제안으로 연세대학교의 환경 관련 연구소로 옮겨 팀장을 2년 정도했다.
연구소에서는 프로젝트 참여 인건비로만 책정해서 급여가 지급되다보니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경력 인정이 되지 않는 상태로 계속 있을 수는 없어서 퇴사를 결정했다.
2013년 무렵 사단법인 시민에서 회계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직원이 세 명 정도 있는 조직 이니 살림살이를 맡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새로 만들 지원센터를 준비하기 위한 채용이었다. 센터 설립이 확정되기 전이라 정식 출근 전까지 몇 달 동안 필요할 때마다 불려가 준비를 도왔다. 예산을 짜고, 제출 서류를 만들고, 다른 기관을 찾아가 벤치마킹을 하기도 했다. 매일 일한 것은 아니지만 정식 급여 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불안하긴 했지만 함께 준비하던 실장님과도 잘 맞았고, 힘들 때 둘이 자료를 만들고 여기 저기 찾아다닌 경험 때문에 계속하게 되었다. 특히 대학 연구소에서 쓰던 연구비 정산 양식과 증빙 체계를 가져와 센터에 맞게 적용했다. 연구소에서 하던 방식을 토대로 영수증 양식부터 서류 정리 방식까지 기초를 잡아 처음부터 세팅했기 때문에 나중에 센터의 서류가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비영리 중간 지원 조직 회계는 처음이어서 다른 기관은 회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물어보고, 외부 활동도 하면서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구축하는 일을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체계를 세우고 일이 돌아가게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당시의 활동은 뿌듯하고 좋은 활동으로 기억한다.
센터 설립을 준비하고, 설립되고 1년 반가량 일한 뒤 임신하면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에 들어갔고 결국 복귀하지 못했다. 몇 년 뒤 센터 회계 담당자가 건강 문제로 업무를 이어가기 어려워지자 다시 연락을 받아서 계약직으로 들어가 결산과 외부 회계감사를 마치고,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센터 문을 닫는 과정까지 있었다. 비품과 서류를 정리해 넘기고 마지막 문을 닫을 때까지 있어서 그런지 주변에서는 ‘센터 문을 열고, 닫았다’ 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2023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비영리조직에 들어갔다. 이전 센터와 연구소는 정해진 예산을 규칙에 맞게 집행하고 문제가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구조였는데 이곳은 직접 사업을 운영하고, 대출 사업도 하고, 조합이기도 하고 각 자금을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통장도 많고 구조도 복잡해서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회계 체계를 바꾸겠다고 제안을 하고 체계를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배짱으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나는 새로운 곳에 가면 내 역할을 온전히 쏟아붓고, 체계를 잘 만들어 놓았을 때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거의 어디를 가든 새로 구축하거나 판을 바꾸어 놓는 편이다. 그렇게 열정을 쏟고 나서 2년 일하고 그만뒀다. 마지막 직장을 거치면서 에너지를 잘 분배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쏟으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다시 일하면 타고난 성향 때문에 또 몰입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는 평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다. 무엇인가를 만들고 개척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대가 커진다. ‘너와 함께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기대하는데, 그 무게가 늘 버거웠음에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는 방식이였다. 이제는 그런 방식에 멈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퇴사 후 처음 한 달은 직장에 다닐 때 못했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병원도 다녔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가자 나이가 있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했다. 바로 취업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몇 군데 넣었는데, 당연히 될 줄 알았던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서 사회복지 분야로 바꿔볼까도 생각이 들었지만 자격증만 있고 실무를 모르니 먼저 회계 직무로 복지기관에 지원해 봤다. 면접을 보면서 조직이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받아서 상상했던 현장과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사회복지 실무교육 과정에도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교육을 통해 현장이 나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는데, 운영기관은 곧바로 취업할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교육을 보는 당사자와 취업 실적을 보는 기관의 관점이 달랐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사회복지 분야로 전환하기보다 내가 잘하는 회계를 더 깊게 파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전산세무 국비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교육을 들으면 자신감은 높아지지만, 실무보다는 자격증 취득에 치우친다는 아쉬움도 있다. 과정 이름에는 ‘실무’가 들어가도 실제로는 시험 준비가 중심인 경우가 많았다. 적지 않은 국비가 들어가는 만큼 자격증뿐 아니라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상 하게된다.
잡코리아나 사람인, 고용24에서 내가 지원하려는 직무가 어떤 기술과 자격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본다. 우대사항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필요사항인 경우가 많다. 내가 부족한 항목이 있으면 ‘이걸 채워 놓으면 가능성이 높아지겠구나’ 판단하고 공부할 것을 정하는 편이다. 채용 정보는 고용24, 잡코리아, 사람인을 함께 보고, 사회복지사 채용은 관련 협회나 홈페이지를 보기도 하고, 교육정보는 고용24의 훈련과정 조회, 구청과 여성센터 홈페이지, 지역 블로그, 자격증 관련 홈페이지와 카페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한번 교육을 들으면 그 기관에서 후속 정보가 오기도 하고, 여러 사이트를 타고 들어가다가 새로운 과정을 알게 되기도 하는데 아는 사람은 찾아서 이용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정보가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기 쉬운 구조라 생각한다.
도봉구의 50플러스 일자리 박람회에 가봤는데, 고령층과 단순노동·단시간 계약직 일자리 중심이었다. 이력서 상담도 받아봤지만 ‘잘 쓰셨다’는 말 외에 요즘 채용 흐름에 맞춰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인 조언을 받지 못했다. 사진 촬영이나 퍼스널컬러 같은 행사는 있었지만, 실제로 취업하려는 사람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컨설팅은 부족했다. 50플러스 정책이 40~60대로 확대된다고 하지만, 40대 중반 이후부터 50대 초중반까지의 사람은 여전히 중간에 끼어 있다고 느낀다. 홍보는 많지만 실제 프로그램의 질이나 전문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연령대도 높은 시니어에게 치우쳐 있다. 고용24에서 훈련과정을 찾을 수 있지만, 국비교육은 IT나 전산처럼 젊은 층이 많이 선택하는 분야에 치우쳐 있다. 회계나 전산 세무 과정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참여하지만, 중장년이 선택할 수 있는 과정 자체가 많지 않다. 또 취업하려는 분야와 직접 관련된 교육만 승인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실무에서는 회계뿐 아니라 엑셀이나 그래픽 같은 기술이 함께 필요할 수 있는데, 직종 코드를 하나 정하면 다른 분야 교육을 함께 듣기 어렵다. 중장년에게는 기존 경력을 보완할 여러 기술을 묶어 배우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중장년에게는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분야가 아주 많지 않아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몇 개 분야를 집중해서 다루면 좋을것 같다. 채용정보, 실무교육, 자격증 시험 일정과 접수 방법을 한곳에 모아 계속 업데이트하면 여기저기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자격증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런 자격증이 있구나, 나도 해볼 수 있겠구나, 집과 가까운 곳에서 교육을 들을 수 있구나’라는 발견 자체가 중요하다. 교육을 들으면서 계속 이력서를 넣는 것은 그 사이에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면 ‘나이가 많아서 아무도 나를 뽑지 않는구나’ 하며 자존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무엇인가 배우고 있으면 ‘나는 계속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면접에서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쉬고 있다면 마냥 쉬기보다 가볍게라도 교육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교육에서 새로운 기회가 연결될 수도 있고,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감각도 생긴다. 나에게 공부는 단순히 자격증을 하나 더 얻는 일이 아니라, 취업 준비 기간의 불안과 자존감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이번에는 오래 다닐 생각이라 출퇴근 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다니면 출근길부터 지치고, 회사에서 산뜻하게 일하기 어려웠다. 강북구·노원구·성북구·도봉구를 중심으로 보고 동대문구와 인접 지역까지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리나 회계 직무를 찾지만, 이 지역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심지어 이력서를 열어 보지 않는 회사도 많고, 1년 가까이 계속 같은 공고를 내는 곳도 있다. 나이가 많아지니 피드백이 잘 오지 않는 현실도 체감하고 있다. 아무리 능력과 기술이 있어도 나이는 바꿀 수 없고, 내 경력을 받아줄 자리가 비어 있을 때만 들어갈 수 있으니 길이 상당히 좁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다음 회사에 들어가면 쉽게 그만두지 않고 오래 버텨야 한다는 생각이 예전보다 커지고 있다. 다음의 일을 고민하면서 영리와 비영리 중 하나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비영리에서 오래 일한 분들을 보면 자신의 가치와 방향이 아주 뚜렷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그럴 수도 있지, 저런 생각도 있을 수 있지’라고 계속 흔들리고 질문하는 편이고, 뚜렷함이 있어야 한 길을 오래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비영리 활동가라고 부르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주변 사람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어 업무 체계를 만든 경험 역시 활동의 출발점 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말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활동가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회의 문제를 바꾸려는 사람인데 나는 범사회적인 문제보다 제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제가 아끼는 사람이 편안 하기를 바라는 성향에 가깝기에, 사회적 통념이 잘못됐다고 스스로 판단해 앞장서기보다, 믿는 사람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편인것 같다. 비영리는 업무 밖의 이야기까지 많이 나누고 관계가 수평적인 반면 영리조직은 필요한 업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말하고 상하관계 경계가 더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영리나 비영리보다는 업무의 경계가 분명하고 에너지를 고르게 쓸 수 있는 곳인지, 오래 일할 수 있는 곳 인지를 더 중요하게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