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활동가 인터뷰

김희정 - 조직을 떠나도, 어디서나 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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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95년 동북여성민우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생협  첫 매장을 만드는 일, 지방선거에 민우회 후보를 내고 선거활동을 하고, 성인지관점의 예산분석을 하는 사업 등을 담당했다. 민우회는 가장 중요한 활동가 정체성을 만들어준 곳이고,  함께 만들어가는 법을 배운 시간이었다. 모금을 더 잘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기 위해 아름다운 재단으로 옮긴 뒤 배분 업무를 하다가 육아로 그만두었다. 서울시 NPO지원센타가 설립되면서 공익활동지원팀장을 맡았고, 시민들의 자발적인 공익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전업활동가가 아니어도 사회를 바꾸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NPO지원센터를 그만두고 나서는 평생 좋아해 온 그래픽노블(예술, 작가주의 만화)를 중심으로 팟캐스트을 운영하였고, 2년 계약직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략기획본부에서 일했다.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는 60+기후행동에서 선배세대 활동가들을 돕고 있으며, 잠시 지역 국회의원실에서 일하며 지역자원 재발견의 시간을 갖었다. 현재는 무연고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하는 자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장례와 죽음, 유품정리를 통해 관계와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을 삶의 다음 주제로 삼아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함께 만들었던 활동 경험,  양육과 돌봄으로 인한 변하는  활동 주기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협 매장을 여는 거였는데 매뉴얼이 아무것도 없었다. 생협 본부가 있어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고, 가격표 붙이는 것부터 POP 만드는 것까지 양식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생협 매장에  손님이 오면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하는지, “어서 오세요”라고 해야 하는지, “반갑습니다”라고 해야 하는지도 정해진 게 없었다. 실무자는 거의 저 혼자였고, 운영위원(회원)들과 다 같이 하나씩 만들었다. 그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싫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엄청 열심히 했더라고요. 몰입해서 모든 걸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가격표 하나, 인사말 하나부터 정하고 매장이 돌아가게 만드는 경험이 활동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일을 그만둘 때는 눈물이 주르륵 났다. “내가 다시는 이런 활동을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컸다. 활동이 꼭 조직에서 일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됐었다.  사회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출산 후 2006년에 아름다운 재단에서 1%나눔 캠페인을 하는 것을 보고 돈 모으는 원천술을 배워 지역에 있는 활동 선배들에게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입사하였다. 지역 현장 단체들은 그렇게 일을 많이 하고 늘 돈이 필요한데 돈이 안 들어오는데 아름다운재단은 돈을 모으겠다고 했는데 정말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모금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모금팀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배분팀을 맡게 되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양육과 돌봄 문제가 생겨서 배분팀장을 그만 두게 되었다. 선배들이 주 3일 근무나 탄력근무 같은 방법을 이야기해 줬는데 솔직히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팀장이었기 때문에 업무를 줄인다는 게 상상이 안 되어 3일만 나가도 남모르게 똑같이 일하게 될 것만 같았다. 반상근과 육아를 병행 하던 중 NPO지원센타를 만든다고 같이 하자고 제안이 왔었다. NPO지원센터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공익활동을 많이 봤다. 그러면서 전업 활동가가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은 활동가일 수 있고, 어디서든 활동가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경험이 씨앗이 되어 연결되는 활동

2019년 무렵에는 재단 경험이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제안으로 다시 계약직으로 일을 했다. 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일단 와보라고 해서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정말 고생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2년 계약이었지만 조금 일찍 그만뒀고, 그 뒤에는 공식적으로 프리랜서처럼 프로젝트 일을 계속했다.

2024년 9월부터는 민주당 지역 사무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였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필요했지만, 퇴사하면서 결심한 것 중의 하나가 ‘마이크를 잡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였다. PPT를 만들고 발표하거나 사회를 보는 일도 정말 하기 싫었고, 지하철을 타고 멀리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마을버스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동네에서, 크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하였다. 동네 구의원이 ‘“우리 동네에서 야망 없는 애가 누굴까 생각하다가 네 생각이 났다”고 했다. 정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야망이 있으면 문제를 많이 일으킬 수 있다는 거예요.’ 웃기지만 그 정도면 할 수 있겠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고, 지금은 동네 일을 하면서 다른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하고, 예전에 만난 선생님들과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2월쯤 센터를 그만둔 뒤에는 만화와 그래픽노블, 영상 쪽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원사업도 직접 공부해서 프로젝트를 따고, 팟캐스트와 유튜브도 여러 명이 함께 했다. 2017년 무렵 시작해 2019년까지 이어갔고, 만화영상진흥원 같은 곳의 지원사업도 받아 프로젝트를 했다. 클럽하우스에서 책 이야기를 하는 모임도 시작했는데 인터뷰할 무렵 150회를 앞두고 있었다. 두 명이 함께 진행했는데 출판사 관계자들이 들어오기도 하고 영국에서 접속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활동에서 큰 수익이 나지는 않았다. 팟캐스트를 할 때는 지원사업을 공부해서 비용을 마련했고,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기도 했다. 돈만 보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콘텐츠로 사람을 만나고 오랫동안 이어왔다는 점에서는 나에게는 중요한 활동이였다.


전환,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청소와 정리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이게 제 DNA입니다." 공익 활동은 사회 속에서 얽혀 살아가다 보니 그 위에 하나 얹힌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었던 건 물품 정리였여서, 물품 정리의 원천기술이 정리수납이라고 해서 2014년쯤 여성발전센터에서 정리수납 자격증을 따놨다. 오랫동안 가지고만 있다가 나중에는 엔딩 코디네이터 자격증도 땄다. 죽음과 장례 절차, 보험, 유품 정리 전반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죽음이라는 주제와 내가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청소와 정리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임대아파트의 정리가 필요한 가정을 찾아가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월차를 내서 가기도 했고, 지금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갔다. 물건을 버리지 못해 악취가 나고 이웃이 위험하다고 느끼는 집도 있을 정도였다. 정리수납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이 들어가 정리하지만, 물건을 왜 버려야 하는지 당사자를 설득하는 심리적인 과정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 평생교육 쪽에서 하는 중장년 인생 2막 창업 프로젝트에도 정리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지원해 선정되어 시범사례로 큰 컨퍼런스에서 발표도 했다. 정리는 혼자 하기 어려워서 팀으로 들어가 배워야 한다. 앞으로는 유품만이 아니라 개인의 짐과 삶을 정리하는 쪽을 계속 탐색하고 싶다.

"유품 정리 쪽으로 가보고 싶어서 50플러스에서 멘토 상담을 받은 적도 있는데 원하는 만큼 구체적인 분야를 그분도 잘 알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분에게 정말 고마웠던 건 관련 정보가 아주 조금이라도 있으면 계속 문자와 전화를 보내주는 거예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도 있었지만 누군가 신경 써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오래 남아요. 그분은 제가 원하는 분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어도, 정보가 저에게서 실제 행동이 되도록 도와준 사람이었어요.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걸 느끼게 했어요. 정보를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신청하고 움직이는 건 다르잖아요. ‘누군가 옆에서 계속 추동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구나’ 생각했어요."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작은 실험과 만남

"중장년 활동가에게는 관심 있는 분야를 짧게라도 깊숙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제가 어떤 단체나 사업이 궁금하면 그곳에서 잠시 인턴처럼 일해볼 수 있는 거예요.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는 처음부터 돈을 받고 일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들어가 보면 우리가 가진 경험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나 일거리를 만들 수도 있어요. 우리 나이에는 맥락 안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볼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개인이 아는 사람에게 전화하고 소개를 부탁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관심 분야를 탐색하는 시간과 네트워크 비용을 줄여주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을 연결해 주는 중간다리가 필요해요. 정보만 던져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해볼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역할이요"


그렇다고 이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아요. 비슷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을 세 번 정도만 모아도 좋겠어요. 20대부터 40대까지 시민사회와 공적 영역에서 일했고, 지금 50대에 조직을 떠나 있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만나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는 30년, 40년을 같이 있었어도 개인으로서는 서로를 잘 몰라요. 만나면 누가 회의를 하고, 누가 섭외하고, 누가 문서를 쓸지만 이야기했지 “너는 어렸을 때 뭘 좋아했어?”,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를 물을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나누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가진 경험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을 떠난 뒤에야 보이는 경험의 가치

우리 앞의 시민사회 1세대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고, 아래 세대는 젊은 리더십으로 주목받아요. 우리 또래는 그 사이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없었던 건 아니에요. 곳곳에서 윤활유처럼 일했고, 빠지면 큰일 나는 사람들이었어요. 실무를 지원하고 사람을 조직하고 조율하는 일은 손이 많이 가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요.

조직을 떠난 뒤에는 그 경험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책임지는 실무자가 아니라 조력자로 옆에 서니 제가 배웠던 것이 더 가치 있게 보였어요. 외부의 전문가나 오래된 조직 문화와 현장 실무자 사이에 브리지를 놓고, 견고한 문화에 작은 균열을 내는 역할을 요구받기도 해요. 쉽지는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공익활동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 조직에 상근하지 않아도 어디에서나 활동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네에서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만화와 책 이야기를 이어가고, 정리가 필요한 집에 가고, 선배와 후배 사이를 연결하는 것도 활동이에요. 앞으로 아주 거창한 책임을 지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과 지금까지 배운 것을 연결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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