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20대에는 서울 홍대앞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했고, 30대에는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을 설립했다. 도시에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삶을 전환하기 위해 생활생산시스템을 구상하던 중, 버려지는 재료와 도구들을 공유하는 공공제작소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실현했다.
제작소의 지속가능한 운영 전략을 모색하다 방치된 구)마포석유비축기지를 발견하여 비공식 점유 활동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과 아래로부터 제안하고 개발하는 장소만들기 프로젝트 ‘비빌기지’를 주도했다. 이 활동은 시장 논리와 부동산 개발에 압도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개인과 커뮤니티 차원의 해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 청년허브의 대표를 맡아 청년들이 자기 기반을 마련하며 새로운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일을 지원했다. 40대에는 파주로 삶의 터전을 이주하여 도시전략 및 디지털 시민참여 전략을 수립하는 조직에서 C레벨 관리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와 주식회사 파도치다에서 비영리 조직의 변화를 지원하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
모색과 탐색
집안 유일한 여자 아이로 태어났고, 단과대(전기전자공학부) 첫 여성 학생회장이 되는 등 남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성장하며 주눅들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의 꿈은 방송국에서 다큐 혹은 드라마PD가 되는 것이었는데,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때 MBC에서 연수하면서 내가 꿈꾸던 환경과 다름을 미련없이 떨쳐냈다. 매체에서 김민기 씨의 지하철 1호선 공연을 대안 뮤지컬로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매료되어 언젠가 학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드라마 PD의 꿈을 접고, 학생 운동을 했고, 대학 시절 학교 밖 인문사회 활동을 못 해본 것이 아쉬워서, 졸업 후 부모님께 취업을 유예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하고싶은 일을 찾겠다 하고, 집 근처 레코드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가르쳐달라는 알바생에게 사장님은 가게에 있는 모든 음반을 틀어주며 음악과 철학, 정치 이야기를 들려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가게 아침 오픈 당번을 3년 동안 이어갔다. 여젼히 막연한 미래였지만, 문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런 사람들과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진학을 고민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도 있었지만, 경로가 보이지 않으니 학교라는 소속을 통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술경영 등 문화 관련 대학원을 탐색하던 중 주변에서 만류했고, 한겨레문화센터의 문화콘텐츠 기획자 과정에서 허벅지밴드의 안이영노 선생님을 만나 지금은 모두 자기 영역을 일군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젊은 문화예술기획자들과 하자센터를 알게 된다. 하자센터라는 물리적 공간을 경험하며, 공간 기반의 문화생산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 만들기’에 대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그리고 문화기획자
문화예술교육기획 에이스벤추라를 만들고 하자센터와 경기문화재단, 대안학교 등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10대들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문화 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3년 넘게 신나고 바쁘게 보냈다. 십대를 막 지난 시점에서 ‘삶의 기획’이란 모토와 이를 위한 기획 역량을 키우는 일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내 삶의 기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레코드 가게, 한겨레 문화센터, 허벅지 밴드의 안이영노, 하자 센터 등의 활동 배경이 자연스럽게 홍대앞 문화와 연결되었다. 꽉 채운 삼 년간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정리하고, 십대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기획 활동에서 연결되어 생겨난 홍대앞 청소년 문화존 사업팀(문화로놀이짱)에 합류했다. 십대를 만나는 사업이지만, 홍대앞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활동/사람/공간을 십대들에게 소개하거나 십대들의 활동과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문화로놀이짱은 그 프로젝트 이름이었고, 후에 단체의 이름이 된다. 이 시기에 나는 지역문화기획자 혹은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지역의 문화기획자들을 만나고, 학습하고, 홍대앞 문화활동을 기획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했다.
”공공시장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웠고 내 삶을 변화시킨 것은 확실하지만 시장으로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미미했어.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간판없는 가게, 독립서점과 독립출판, 양조장, 수리활동, 제작문화,스몰브랜딩, 로컬라이프의 힌트가 될만한 전초활동을 이때 봤어“
‘문화로놀이짱’ 프로젝트를 단체로 그리고 (구)마포석유비축기지에서 ‘업사이클링 제작소’와 ‘비빌기지’ 프로젝트로 이어가게 되었던 계기는 ‘00 시장’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면서 부터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동안 홍대앞 공터에서 10대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었다. 이 시장은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아니라 ‘아직 없는 상품/경험/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판매를 넘어 교환/공유/학습하는 장소를 만들자는 모토로 기획되었다.
공공 제작소 설립과 운영 그리고 생산자
”생산기술을 배우면서 생산자로서 내 삶을 나답게 꾸려나가는 것이 만족스러웠어. 그리고 주변에 있는 시설물이나 구조물이 다르게 보이는 거야.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출발한 활동이 확장되어 공적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어졌어. 그리고 만들기는 되게 신기한 게 혼자 해서는 별로 재미없어. 재봉틀도 해봤지만 만들다보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선물을 한다거나… 그렇게 관계를 확장하게 돼. 목공 기술을 익히면서 공간을 소비하던 방식에서 내 공간을 정돈해 친구들을 초대하게 되고, 공간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증 계속 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일들로 일머리가 돌아가게 되었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삶기술(자기 삶을 지지/운영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역량이 형성되었고, 목공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습득하고, 버려지는 재료들을 순환/연결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00시장을 함께 만들었던 디자인 그룹 노네임노샵과 대안학교 민들레 사랑방 그리고 음악가 김목인, 사이와 놀이짱 멤버들이 6주간 진행했던 프로젝트 개발 워크숍에서 00 창고와 00 공방 시나리오가 탄생했고, 시나리오를 실행하기 위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오픈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옥상 공방 프로젝트를 실험했다. 일시적인 거점이 되는 시장 만들기에서, 일상적인 거점이 되는 제작소 만들기로 이행하는 시간이었고, 이를 본격적인 일과 일터로 만드는 구상을 하게되었다. 우연한 계기에 폐목재로 집수리 사업을 시행하는 사회적기업을 구상하며, 공모전에 나간 성미산 마을 조반장을 만나게 되었고, 일종의 자문으로 시작한 만남이 함께 사업을 구상하는 시간으로 변모하며 SK 사회적기업 창업 경진대회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모전 중간에 합류하여 사업모델을 바꾸고, 수상까지 이어지는 몇 달간의 시간과 이후 조직을 구상하는 시간이 긴 시간 전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서울형 사회적기업 1호가 되었고,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을 함께 만들어, 동료를 모으고, 제작소를 만들기 위한 공간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사업모델을 구상할 당시부터 공공공간의 틈새를 찾거나, 유휴공간에 버려지는 재료를 모으고, 재료를 활용한 제작 공간과 교육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본격적으로 유휴공간과 틈새 공간을 찾고, 버려진 재료를 활용하여 상품을 제작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활용을 멈춘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발견하고, 점거하여 업사이클링 제작소로 만들기까지 공식과 비공식을 오가며 행정과 협력하고, 퇴거 명령에 대항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버티면서 ‘업사이클링 제작소’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 공원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생산자들과 이행기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전환을 실험하고, 삶의 양식을 생산하는 공원을 모토로 ‘비빌기지’ 프로젝트를 실험했다. 석유비축기지에서 놀이짱의 7년이란 점거 생활과, 비빌기지 멤버들이 생기며 이행기지 실험이 진행된 2년의 역사와 자산을 지속하기 위해 서울시와 지난한 협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활동 자산을 인정받아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문화비축기지 공원에 공식적으로 안착하는 합의를 이루게 되었다.
중간지원조직의 리더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연결자이자 통번역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만나야 하는) 대상들에게 지금 상황들을 호소력 있게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제도화된 시간을 다음 리더에게 이양하고, 서울시 청년허브 센터장이 되었고 행정의 언어를 익히고,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수립된 계획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도시 서울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특히 청년허브에서 국내외 교류 사업을 새로 기획했는데, 서울의 청년들이 지역과 연결되는 경험의 장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과 비빌언덕을 만드는 일을 통해 내 활동의 시야도 지역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아시아 청년 연구활동가 펠로우십(AYARF)을 통해 연구와 활동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외 청년들의 밀도 높은 활동 공간을 만드는 일을 기획했다. 많은 국내외 협력자들과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서울에 2주간 체류하며 펠로우들이 동료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에서 출발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확장되었던 지난 활동 경험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태계를 고민하는 역할로 확장되고 전환되는 경험을 했다. 또한 경청년허브 활동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학습과 회고를 집중적으로 하게되었고, 활동과 관련해서는 시빅 데이터 활동에 큰 관심이 생겼다. 청년허브 이후 빠띠에 합류해서 데이터 프로젝트를 이어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홍대앞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20-30대를 거쳐 청년허브에서의 활동까지 마무리 한 이후, 경력을 전환하는 것과 다음 활동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에너지는 소진되었고, 생각은 많아지는 시간이었고 의식적으로 나를 내버려 두고 힘을 빼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비영리 활동 생태계 기획자
“내가 어디 출신이라는… 활동의 전통성이 없는데.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나는 어떤 아젠다나 무언가를 깊게 파는 것을 잘 해낼 자신은 없어.
하지만 나에게는 되게 대중적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대중적인 감각이랑 변화를 연결시키는 일을 했을 때 가장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진기를 거쳐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를 만드는 일에 선배들이 초대해 주어서, 합류하게 되었다. 여전히 자기주도적인 활동을 만드는 것이 내 활동의 주요한 모토인데, 활동을 위한 역량과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엣지에 합류해서 3년 간 활동하고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 활동의 역량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자기주도적인 학습 환경 조성’을 목표로 삼고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변화를 만드는 일에 본질을 두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습 생태계를 만드는 일, 나아가 활동가들이 언제든 배우고, 교류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있는 학교를 만드는 일을 도모하고 꿈꾸는 일은 커리어의 전환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경로라고 생각한다.
20대에는 서울 홍대앞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동했고, 30대에는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을 설립했다. 도시에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는 삶을 전환하기 위해 생활생산시스템을 구상하던 중, 버려지는 재료와 도구들을 공유하는 공공제작소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실현했다.
제작소의 지속가능한 운영 전략을 모색하다 방치된 구)마포석유비축기지를 발견하여 비공식 점유 활동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과 아래로부터 제안하고 개발하는 장소만들기 프로젝트 ‘비빌기지’를 주도했다. 이 활동은 시장 논리와 부동산 개발에 압도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개인과 커뮤니티 차원의 해법을 찾는 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 청년허브의 대표를 맡아 청년들이 자기 기반을 마련하며 새로운 삶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일을 지원했다. 40대에는 파주로 삶의 터전을 이주하여 도시전략 및 디지털 시민참여 전략을 수립하는 조직에서 C레벨 관리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와 주식회사 파도치다에서 비영리 조직의 변화를 지원하는 일을 도모하고 있다.
집안 유일한 여자 아이로 태어났고, 단과대(전기전자공학부) 첫 여성 학생회장이 되는 등 남성들이 많은 환경에서 성장하며 주눅들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의 꿈은 방송국에서 다큐 혹은 드라마PD가 되는 것이었는데, 대학 2학년 여름 방학 때 MBC에서 연수하면서 내가 꿈꾸던 환경과 다름을 미련없이 떨쳐냈다. 매체에서 김민기 씨의 지하철 1호선 공연을 대안 뮤지컬로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를 보고 매료되어 언젠가 학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드라마 PD의 꿈을 접고, 학생 운동을 했고, 대학 시절 학교 밖 인문사회 활동을 못 해본 것이 아쉬워서, 졸업 후 부모님께 취업을 유예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하고싶은 일을 찾겠다 하고, 집 근처 레코드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가르쳐달라는 알바생에게 사장님은 가게에 있는 모든 음반을 틀어주며 음악과 철학, 정치 이야기를 들려줬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가게 아침 오픈 당번을 3년 동안 이어갔다. 여젼히 막연한 미래였지만, 문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런 사람들과 변화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기에 진학을 고민했다. 배움에 대한 욕구도 있었지만, 경로가 보이지 않으니 학교라는 소속을 통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술경영 등 문화 관련 대학원을 탐색하던 중 주변에서 만류했고, 한겨레문화센터의 문화콘텐츠 기획자 과정에서 허벅지밴드의 안이영노 선생님을 만나 지금은 모두 자기 영역을 일군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젊은 문화예술기획자들과 하자센터를 알게 된다. 하자센터라는 물리적 공간을 경험하며, 공간 기반의 문화생산 활동이 펼쳐지는 ‘장소 만들기’에 대한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기획 에이스벤추라를 만들고 하자센터와 경기문화재단, 대안학교 등에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10대들이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문화 기획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3년 넘게 신나고 바쁘게 보냈다. 십대를 막 지난 시점에서 ‘삶의 기획’이란 모토와 이를 위한 기획 역량을 키우는 일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내 삶의 기획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레코드 가게, 한겨레 문화센터, 허벅지 밴드의 안이영노, 하자 센터 등의 활동 배경이 자연스럽게 홍대앞 문화와 연결되었다. 꽉 채운 삼 년간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정리하고, 십대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기획 활동에서 연결되어 생겨난 홍대앞 청소년 문화존 사업팀(문화로놀이짱)에 합류했다. 십대를 만나는 사업이지만, 홍대앞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태동하고 있는 활동/사람/공간을 십대들에게 소개하거나 십대들의 활동과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문화로놀이짱은 그 프로젝트 이름이었고, 후에 단체의 이름이 된다. 이 시기에 나는 지역문화기획자 혹은 문화기획자라는 정체성이 형성되었고, 지역의 문화기획자들을 만나고, 학습하고, 홍대앞 문화활동을 기획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했다.
”공공시장은 일종의 퍼포먼스에 가까웠고 내 삶을 변화시킨 것은 확실하지만 시장으로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미미했어.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간판없는 가게, 독립서점과 독립출판, 양조장, 수리활동, 제작문화,스몰브랜딩, 로컬라이프의 힌트가 될만한 전초활동을 이때 봤어“
‘문화로놀이짱’ 프로젝트를 단체로 그리고 (구)마포석유비축기지에서 ‘업사이클링 제작소’와 ‘비빌기지’ 프로젝트로 이어가게 되었던 계기는 ‘00 시장’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면서 부터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동안 홍대앞 공터에서 10대들을 위한 시장을 만들었다. 이 시장은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아니라 ‘아직 없는 상품/경험/삶의 방식을 개발하고, 판매를 넘어 교환/공유/학습하는 장소를 만들자는 모토로 기획되었다.
”생산기술을 배우면서 생산자로서 내 삶을 나답게 꾸려나가는 것이 만족스러웠어. 그리고 주변에 있는 시설물이나 구조물이 다르게 보이는 거야.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출발한 활동이 확장되어 공적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어졌어. 그리고 만들기는 되게 신기한 게 혼자 해서는 별로 재미없어. 재봉틀도 해봤지만 만들다보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선물을 한다거나… 그렇게 관계를 확장하게 돼. 목공 기술을 익히면서 공간을 소비하던 방식에서 내 공간을 정돈해 친구들을 초대하게 되고, 공간에 필요한 것을 만들고,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증 계속 관계를 연결할 수 있는 일들로 일머리가 돌아가게 되었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삶기술(자기 삶을 지지/운영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역량이 형성되었고, 목공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습득하고, 버려지는 재료들을 순환/연결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00시장을 함께 만들었던 디자인 그룹 노네임노샵과 대안학교 민들레 사랑방 그리고 음악가 김목인, 사이와 놀이짱 멤버들이 6주간 진행했던 프로젝트 개발 워크숍에서 00 창고와 00 공방 시나리오가 탄생했고, 시나리오를 실행하기 위해 서울문화재단에서 오픈한 서교예술실험센터에 옥상 공방 프로젝트를 실험했다. 일시적인 거점이 되는 시장 만들기에서, 일상적인 거점이 되는 제작소 만들기로 이행하는 시간이었고, 이를 본격적인 일과 일터로 만드는 구상을 하게되었다. 우연한 계기에 폐목재로 집수리 사업을 시행하는 사회적기업을 구상하며, 공모전에 나간 성미산 마을 조반장을 만나게 되었고, 일종의 자문으로 시작한 만남이 함께 사업을 구상하는 시간으로 변모하며 SK 사회적기업 창업 경진대회에서 혁신상을 수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모전 중간에 합류하여 사업모델을 바꾸고, 수상까지 이어지는 몇 달간의 시간과 이후 조직을 구상하는 시간이 긴 시간 전환 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이후 서울형 사회적기업 1호가 되었고,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을 함께 만들어, 동료를 모으고, 제작소를 만들기 위한 공간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사업모델을 구상할 당시부터 공공공간의 틈새를 찾거나, 유휴공간에 버려지는 재료를 모으고, 재료를 활용한 제작 공간과 교육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기에, 본격적으로 유휴공간과 틈새 공간을 찾고, 버려진 재료를 활용하여 상품을 제작하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활용을 멈춘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발견하고, 점거하여 업사이클링 제작소로 만들기까지 공식과 비공식을 오가며 행정과 협력하고, 퇴거 명령에 대항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버티면서 ‘업사이클링 제작소’는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 공원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생산자들과 이행기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전환을 실험하고, 삶의 양식을 생산하는 공원을 모토로 ‘비빌기지’ 프로젝트를 실험했다. 석유비축기지에서 놀이짱의 7년이란 점거 생활과, 비빌기지 멤버들이 생기며 이행기지 실험이 진행된 2년의 역사와 자산을 지속하기 위해 서울시와 지난한 협상을 시작하게 되었고, 활동 자산을 인정받아 기부채납을 조건으로 문화비축기지 공원에 공식적으로 안착하는 합의를 이루게 되었다.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연결자이자 통번역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만나야 하는) 대상들에게 지금 상황들을 호소력 있게 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제도화된 시간을 다음 리더에게 이양하고, 서울시 청년허브 센터장이 되었고 행정의 언어를 익히고, 주어진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수립된 계획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험을 해보았다. 자율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도시 서울에서 자립할 수 있는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특히 청년허브에서 국내외 교류 사업을 새로 기획했는데, 서울의 청년들이 지역과 연결되는 경험의 장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사람들과 비빌언덕을 만드는 일을 통해 내 활동의 시야도 지역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로 ‘아시아 청년 연구활동가 펠로우십(AYARF)을 통해 연구와 활동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외 청년들의 밀도 높은 활동 공간을 만드는 일을 기획했다. 많은 국내외 협력자들과 함께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서울에 2주간 체류하며 펠로우들이 동료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결성하는 일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에서 출발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확장되었던 지난 활동 경험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생태계를 고민하는 역할로 확장되고 전환되는 경험을 했다. 또한 경청년허브 활동을 통해 조직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학습과 회고를 집중적으로 하게되었고, 활동과 관련해서는 시빅 데이터 활동에 큰 관심이 생겼다. 청년허브 이후 빠띠에 합류해서 데이터 프로젝트를 이어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홍대앞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20-30대를 거쳐 청년허브에서의 활동까지 마무리 한 이후, 경력을 전환하는 것과 다음 활동을 모색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에너지는 소진되었고, 생각은 많아지는 시간이었고 의식적으로 나를 내버려 두고 힘을 빼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썼던 것 같다.
“내가 어디 출신이라는… 활동의 전통성이 없는데.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나는 어떤 아젠다나 무언가를 깊게 파는 것을 잘 해낼 자신은 없어.
하지만 나에게는 되게 대중적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대중적인 감각이랑 변화를 연결시키는 일을 했을 때 가장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소진기를 거쳐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를 만드는 일에 선배들이 초대해 주어서, 합류하게 되었다. 여전히 자기주도적인 활동을 만드는 것이 내 활동의 주요한 모토인데, 활동을 위한 역량과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엣지에 합류해서 3년 간 활동하고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 활동의 역량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자기주도적인 학습 환경 조성’을 목표로 삼고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변화를 만드는 일에 본질을 두고 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습 생태계를 만드는 일, 나아가 활동가들이 언제든 배우고, 교류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있는 학교를 만드는 일을 도모하고 꿈꾸는 일은 커리어의 전환이기도 하지만, 자연스러운 경로라고 생각한다.